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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14. 2022

나의 초능력들 22

떠나기 : 나를 온전히 사르는 방법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하러 간다


훌쩍 떠날 수 있는 것도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계획 없는 떠남을 좋아한다. 동행자와 기약하고 목적지를 고르고 동선을 짜고 숙소를 잡고 맛집을 탐색해 떠나는 여행도 나쁘지 않지만 정해진 코스를 현란하게 곡예하는 롤러코스터 같아서 흥미가 반감된다. 나만의 풍경을 획득할 수도 없고 욕망마저 기성품으로 걸치는 듯해서 막상 여행의 궤도에 들어서면 쉬 식어버린 기억들이 많았다. 준비가 철저할수록 여행지에서의 싱거움은 떠나기 전 단계에서 여행이 품은 희열의 8할을 소비한 탓일 게다.


떠나는 것은 익숙한 일상에서 무지의 저편으로 나를 던지는 일이다. 나의 뻔한 하루의 동선을 삭제하고 그 자리에 알 수 없는 길을 그려보겠다는 각오다.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아무것도 방해 같은 도움을 거부한 채! 그들도 좋았다고 나도 좋을 거라는 안일한 확신을 저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이다. 그래서 떠난 곳에서는 외지인들이 일시적으로 소비하는 식당보다는 현지인들이 지속적으로 즐겨 찾는 음식점들을 선호하니 더욱 계획할 수 없다. 이는 숨겨진 맛집을 경험한다는 장점보다도 떠나면 그곳에 거주하는 낯선이 와의 우연한 만남과 교감을 기꺼워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는 생각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선물 같은 순간이다.


떠나는 것은 불편해지는 것의 가치를 만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매 순간 물어야 하고 돌다리를 두드려야 한다. 스마트폰이 지팡이가 되고 가이드가 된 세상이지만 최대한 폰에서 눈을 떼고 주변과 소통하며 다니는 것이 좋았다. 조금은 헤매기도 하다가 우연히 만난 장소와 인물들은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가. 늘 최고의 여행은 예상치 못한 어긋남과 순조롭지 못함에서 나왔다. 매끈한 여행들은 아무런 상처를 주지도 않았지만 나에게 그 어떤 희열도 안겨 주지 않았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계획 없이 떠나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전라도 어느 중소도시를 난생처음 다녀왔고 오늘은 경상도 어느 해안도시를 난데없이 가고 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어디서 잘 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어제의 나로부터 한층 낯설어진 나로 돌아올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늘 새로워지는 것이 최선은 아니지만 떠나기는 나를 다시 새롭게 시작할 사려 깊은 이유를 발견하도록 해 준다. 이제 펜을 내려놓고 떠나기의 맛에 몰두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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