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라는 말은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개념이다. 누가 보아도 성공적인 결과물인 경우도 있지만 나만의 소소한 성공들도 즐비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자의 보편적인 성공을 꿈꾸지만 늘 요원하고 멀리 놓여있어 쉬 지치고 만다. 나만의 의미 있는 성공들을 만들어 나간다면 너무 소박한 욕망이 되는 것일까.
개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상반된 의미가 담겨 있다. 흐리다가 맑아지는 상태를 뜻하는 '날씨가 개다'가 있고, 포개어 접는 행위를 뜻하는 '이부자리를 개다'가 있다. 무언가 펼치는 행위가 밝아지는 날씨의 갬과 나란히 어울릴 듯한데 오히려 접는 것과 나란히 사용하는 것을 보면 잘 포개어 접는 것은 마음의 문제에 밀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불을 개다
자기 전에 네모나게 덥고 잔 이불은 자고 일어나 보면 어지럽게 헝클어져 내 몸을 말고 있다. 일어나면서 박찬 이불은 내버려 두어도 그다지 문제가 없을 일이다. 그러나 그대로 두면 문제가 커진다고 믿는 쪽이다. 헝클어진 이불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면 그 모양과 상태가 고스란히 내면에 전이되어하는 일마다 어수선한 기분과 태돌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하루의 시작부터 작은 실패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 징크스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그 빌미를 지우는 것이다. 이불의 크기는 혼자서 정리하기에 크지만 요령만 있으면 혼자서도 손쉽게 할 수 있다. 우선 펼친 채 짧은 쪽의 두 귀를 포개고 다시 비율이 커진 직사각형의 가까운 두 귀를 잡고 가장 먼 쪽의 두 귀에 맞게 접고 또 접으면 베개 크기의 이불이 된다. 이불의 볼록한 배부분을 앞이 보이게 놓고 베개를 올려놓으면 정리는 간단히 끝. 짧은 시간의 성공을 맛본 것이 된다. 이제는 그 좋은 리듬에 자연스럽게 올라타면 모든 것은 순조롭다. 무엇이 어려운가.
누군가는 퇴근해서 돌아와 잠자리에 들 때 잘 정돈된 이불을 보면 기분이 좋아서 갠다고도 하지만 나는 개는 행위 그자체에 의미를 둔다. 연필을 깎는 것도 잘 깎여진 필통 속 연필들이 보기 좋아서가 아니라 연필을 커터칼로 손수 깎을 때가 기분 좋아서 직접 깎는다. 결과보다 과정에서 만족하는 태도들은 성공에 대한 감각에도 적지않은영향을 끼친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자고 일어난 잠자리에 놓여있는 이불의 네 귀를 맞추어 개는 것이다. 그야말로 작고 하찮은 행위지만 나는 중요한 성공 연습이라고 여긴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이렇게 누구가 할 수 있으나 겉으로 보기에 극도로 사소한 것처럼 존재해 놓치기 쉽다. 작은 가치의 위대함도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큰 성공을 바란다는 것은 저기 보이는 큰 산을 오르기 위해 작은 걸음이 무슨 소용이라며 주저앉아서 케이블카 놓이기만 기다리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