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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15. 2022

나의 초능력들 23

기도하기 : 한없이 낮아지는 영적 운동

애초부터 신과의 거래가 아니었기에


기도는 종교적인 행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한 시간 속에서 어쩌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은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해 내면의 무장을 고민했을 터이고 그 결과로 기도를 발명해 냈을 것이다. 기도를 발명했다고 하면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신을 믿는 이들은 신이 준 거룩한 선물이라고 말할 것이고 무신론자들은 개인이 하는 자발적 정성이라고 의미를 축소할 것이다. 어느 쪽을 수용하든 상관없이 기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하고 환상적인 영적 행위로 볼 수 있다.


나의 기도는 방식과 추구하는 바가 사뭇 신앙적이지 않은 것 같다. 우선 어떤 원하는 바를 내걸고 기도하는 기복적 형태를 민망해하고 지양한다. 신에게 간절하게 원하는 유일한 바가 있다면 스스로 낮아질 것을 간청하는 것이나 그것은 과정이고 태도이기에 사실 나의 다짐에 가깝다. 그것이 나에게는 기도의 강력한 목적이자 방패였다. 자발적 낮아짐의 힘은 무수한 세상에 뿌려진 힘의  논리 중에서 가장 강력했다.


다음으로 혼자 하는 기도는 잘 차려먹는 성대한 식사가 아닌 가장 나약한 호흡에 가까워야 한다고 믿는다. 기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이 단어가 아닌 대체어가 없어서 속상하지만)해져야 기도는 기도 안에서 에너지를 발생한다. 그것은 누구를 누르는 것이 아닌 살리는 에너지다. 상대의 무언가를 뺏어야 내가 가질 수 있는 자연의 섭리를 뛰어넘어 불가능의 현상을 보여준다. 아니, 볼 수 있는 혜안을 던져준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두 손을 모으는 것만으로 기도가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손에 야구공을 쥐고 있다고 본격적인 야구경기가 시작된 것은 아니듯이 마음의 방향키를 맞추는 것이다. 밤새 무의식에서 마련된 집착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손을 모으며 떨치는 것이다. 반복된 기도문을 외면서 로사리오의 장미꽃을 한 송이씩 한 송이씩 엄지로 당기며 나는 혼자서는 가지 못할 참회의 가시밭길을 한발 한발 내딛는다. 아프다. 고프다. 아리다. 그만 갈까. 어쩔 수 없다. 내 십자가는 언젠가 벼랑 사이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막막하다. 누구의 손이 내밀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는 흙탕물을 지나 고요한 평원을 거쳐 막다른 낭떠러지 앞에 나를 옮겨 놓았다. 힘을 빼지 않으면 힘이 아닌 순간이 오자 기도는 입을 다문다. 그리고 적막.


나의 정말 초라한 능력은 가장 작은 목소리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미약하여 허공에서 연기처럼 흩어져 버릴지라도 오늘도 눈을 뜨는 순간 보잘것없이 마르고 기다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기도하는 것이다. 신이시여, 부디 기도하는 순간만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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