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Aug 13. 2022
나의 초능력들 21
매일 쓰기 : 이어져야 명확해지는
불멸이 불가능하기에 계속 간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은 그 본질이 본디 물질의 축적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비밀이었을 것이다. 보이는 것으로는 아무리 쌓아봐야 야트막한 언덕에 그쳤던 경험들이 이 추측을 보다 확신하게 한다. 그러나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시도한 '티끌모아'는 한 번도 태산이 되지 않은 적이 없다. 자꾸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게 된 것도 지속의 힘 때문이 아닐까. 돈과 연결되지 않을수록 복리로 늘어난다는 것이 미스터리다.
신은 인간에게 하루 24시간씩 묶음으로 던져준다. 하나를 소진하면 또 하나를 밤 사이에 놓고 간다. 어리석은 자는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를 별도로 사용하는데, 지혜로운 자는 두 개를 이어서 사용한다. 세 개, 네 개... 계속해서 이어서 쓰게 되면 인간은 막강해질 터이니 신은 해와 달을 번갈아 비추면서 시시각각 다른 마음으로 바꾸고 지루하게 하고 따분하게 하고 성가시게 하고 지치게 해 결국에는 포기하게 만든다. 이때 인간은 쏟아져 내리는 유혹과 방해물들과 매 순간 협상을 하게 되는데 지는 편이 수월하다. 편안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편안함을 곰인형처럼 안고 있어서는 내가 원하는 것들이 불분명해진다. 그러니 불편한 지속으로의 회귀는 불가피하다.
지속의 필연을 몇 가지 친숙한 사례로 언급해보자. 마라톤도 42.195km 동안 지속적으로 뛰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매번의 달리기는 작은 뜀박질에 불과할 것이다. 걸음을 배우기 시작한 아기가 3천 번의 넘어지는 지속적인 시도를 한시라도 거부했다면 당연한 직립보행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살아가면서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항상 처음은 케이크의 표면처럼 달콤하지만 그 내부로 들어갈수록 진득한 인내의 일상과 대면해야 한다. 오아시스를 막 떠난 낙타처럼 뜨거운 사막을 정처 없이 뚜벅뚜벅 걸어갈 일만 펼쳐진다. 여기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어제의 행위는 아무리 애를 써도 완전할 수 없다. 오늘의 동일한 행위와 손을 맞잡아야 견고해진다. 그것은 매일 무언가를 쓰는 행위도 예외는 아니다. 어제 잘 써졌다고 오늘도 잘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제 산을 올랐다가 내려왔다고 오늘 산은 중턱부터 오르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매일 글을 쓰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글을 모르지는 않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오해 마시라! 글 쓰기의 자질이나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 고요한 시간을 만들어 나 자신과의 독대를 하는 수고를 말하는 것이다. 우선 불안이 밀려올 것이다. 당장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엉덩이를 들썩이게 할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글로 지금 종이에 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창하게 말하기를 멈추지 않던 내가 글을 쓰려는 순간 손가락 벙어리가 되어버리는 충격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불가능할 것만 같던 '쓸 거 없음'도 지속적으로 쓰기 시작하자 말문이 떠지듯 글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되도록이면 남의 글을 옮기거나 남의 책에 훈수 두는 글이 아닌 내 생각만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매일 쓰는 것이 매일 끼니를 때우는 것보다 시급한 일로 다가온다. 초라한 능력에서 초능력으로 바뀌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