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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Sep 27. 2022

사물과 마음 사이 III

계단과 고독

계단을 오를수록 고독은 깊어지고


계단을 오르는 일은 산을 오르는 것과 다르다.

규칙적인 높이를 상승하는 것은

불규칙한 행위보다 고독하다.

같은 이미지의 연속적인 나열은 쓸쓸하다.

미래로 다가갈수록 계단을 오를 일이 많다.

평지에서 평지로 이어지는 평온은 끝났다.

한없이 연약해진 이들도 계단을 거역할 수 없다.

유사 계단에라도 몸을 실어야 한다.

계단을 밟지 않는 삶이 가능한가.

버스를 탈 때에도

지하철을 타려고 해도

한숨 나는 나의 위치를 뛰어넘으려 해도

보이지 않는 계단을 디뎌야 한다.

계단은 생존이다.

주저앉기 좋은 모양을 하고 있다.

두 계단에 몸을 맡기면 의자가 된다.

불편한 쉼을 잠시 허용한다.

누군가 문지방을 넘듯 지나간다.

불편은 이내 불안해진다.

그래서 계단에서 멈추는 이는 드물다.

층과 층 사이는 오아시스 간의 사막 같은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오르며 뒤를 보지 않는다.

균형을 잃을 수 있다.

방향을 놓칠 수 있다.

계단을 오르는 이의 뒷모습은 고독한 낙타의 그것이 된다.

내미는 발의 위치가 딛고 있는 발의 높이가 다른 것은 작은 비행이다.

날고 싶은 인간의 허무한 시도들.

절벽을 잘게 쪼개어 놓고 추락하기로 마음먹은 인간은 계단이라는 느린 비행을 한다.

내려와 돌아보니 첫 계단이 아득하다.

날아오르고 다시 착지하지만 비행 아닌 비행이기에 고독해진다.

신이 새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을 시기해

인간은 날기 위해 계단을 발 밑에 깔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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