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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07. 2023

어쩌다, 시낭송 089

느림의 효율

I  어느 쪽이라고 경중이 있겠냐마는


빨라지면 더 행복해질 거란 기대는 끝났다.

연산이 빠르니 회사에서 직원을 줄인다

열차가 빠르니 하루 만에 어디든 다녀온다.

물류가 빠르니 무엇이든 앉아서 구입한다.

통신이 빠르니 어디서도 소통이 가능하다.

편리해지면 행복감도 비례하리란 인류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다.

편리할수록 주어진 편리함에 만족하거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과 느림을 견디는 능력을 잃음과 동시에 더 큰 편리함을 갈구할 뿐이다.


시간을 품어야 맛난 음식들을 놓쳐버렸다.

시간을 참아야 전해지는 손 편지를 잃었다.

시간이 쌓여야 깊어지는 친구가 쉬워졌다.


천천히 차를 끓이며 글을 쓴다.

고온에서 압축해서 급히 뽑아내는 차가 아닌

마른 꽃잎에 끓였다 식힌 물로 우려낸 차다.

시간마다 다른 향과 맛을 낸다.

느림에는 각각의 향기가 고유하다.

손 편지 손글씨에는 그만의 향기가 있다.


이미 성취한 것들을 다시 되돌려놓자는 것이 아니다. 문명의 이기에 기대지 않는 인간의 몸짓 중에서 속도에 눌려버린 귀한 것들을 폐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동물 중에서 태어나서 가장 느리게 일어나 걷게 되는 순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글쓰기가 말하기보다 느리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느리기에 주저하고 주춤하고 머뭇거린다.

주저와 주춤과 머뭇이 없는 빠름은

마치 이스트가 없는 빵이다.

잠도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중요한 여백.

여백은 느림의 정수.

여백이 쓸모없다고 쓸모로 채우거나 삭제해서는 안된다.


느림은 느리기에 시간을 순간에서 영원으로 증폭시켜 존재를 무한한 에너지로 무장시킨다.




II  자꾸 쓰면 쓸수록 난감한


글쓰기는 혼자 하는 행위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가면 수월할 것 같지만 온전히 홀로 걷는 길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마주 앉아 먹는 밥을 대신 소화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고독하고 대책이 막막하다.

그 닿을 수 무지개 같은 글쓰기라 꿈꾸고 동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시나브로 라르고로 쓸 뿐이다.

가끔씩 보이는 한줄기 빛을 보며 오늘도 느리게 느리게 쓴다.




III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https://youtu.be/hTQy5YK_G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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