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Apr 08. 2023
어쩌다, 시낭송 090
브런치 300번째 글을 발행하며
I 생각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글을 씁니다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논어 '위정편' 두 번째 장에 나오는 문장인데, 해석은 이러하다.
공자가 말하기를
시경에서의 시 300편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는 말이다
사특함이란 요사스럽고 간특함을 이르는데, 좀 더 익숙한 의미로 표현하자면 사사로움을 말한다.
때로는 시를 쓰듯 때로는 수필을 쓰듯 브런치에 올린 글이 어느덧 300편이 되었다.
한 편 한 편 나름의 최선을 담아 적었지만 공자의 말씀처럼 사특함은 없었는지 자꾸 돌아보게 된다.
그렇다면 나의 300편은 한 마디로 무어라 묶어 말할 수 있을까.
思無怠 생각함에 게으름이 없다
글 300편이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궁극으로 지향한 곳은 생각의 나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글쓰기를 멈추는 순간 생각하기도 멈출 것 같다.
내게 글쓰기는 생각하기의 정수다.
물론 글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 없이 사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쓰며 하는 생각과 그저 하는 생각은 차이가 크다.
여전히 글쓰기의 힘을 믿는다.
글로 쓸 수 없는 생각은 글로 해석될 때까지 다듬고 정제해야 하는 노력을 수반한다.
나의 생각이 생각만으로 휘발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글로 옮겨 보아야 한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생각이 마른 것이지 펜의 잉크가 멈춘 것은 아니다.
아직도 글을 쓸 때마다 수월하게 생각의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지만 자꾸 두드리고 구슬려야 겨우 문장 하나 얻을 수 있다.
그때마다 깨닫는다.
말하기도 글을 쓰듯이 한다면 일상이 달라졌을 텐데.
글쓰기는 나름의 수용능력에 맞춰서 지혜를 준다.
II 다시 시작하는 시간
하나의 묶음은 마무리가 아니다.
다시 시작하라는 엄중한 충고.
이전과 다르게 나아가라는 절박한 제안.
아무것도 결정난 것도 없고
아무것도 이룬 것도 없고
아무것도 잃은 것도 없으니
눈치보지 말고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떠냐는 무언의 압박.
마침 시작하는 지점이 부활절이라 다시 태어나는 기분.
더 고민하고
더 느끼고
더 아파하고
더 무너지겠다는
자신과의 굳은 언약.
III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이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리
끝과 시작_비스와바 쉼보르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