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라는 벽 혹은 바닥
누구에게는 작두를 타는 일
누구에게는 허공을 휘젓는 일
출발선을 내가 긋는 것만 자유롭다.
도착선은 어디에도 없다.
시작은 정지로부터
마침은 움직임으로.
성질이 다른 두 개를 데칼코마니로 놓아둔 것은 운명이다.
결코 같은 표정으로 들어가고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시작을 벽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는다.
애초에는 통과할 수 없는 통로였으나 시작의 선언으로 문을 낸다.
시작하지 않으면 타인에게는 여전히 벽이다.
동시다발적인 시작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무너진 벽들로 요란한 법이다.
시작은 담이 아니니 구렁이 넘어가듯 해서는 곤란하다.
돌아볼 때 다시 벽이라면 시작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시작을 바닥이라고 불러도 어긋나지 않는다.
시작은 추락보다는 비상의 궤적을 그린다.
하나씩 쌓아 올리는 성의 벽돌.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끝은 첨예해지고 날카로워진다.
처음부터 시작에 대한 태도는 기반이 되고 초석이 된다.
불만스럽게 중도 포기하지 않으려면 시작의 속도는 라르고를 권장한다.
다시 시를 쓰는 마음으로 시작하련다.
가장 명징한 단어를 고르고
가장 적확한 언어에 기대어
가장 나다운 이야기를 엮어가야지.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쉬운가
늘 행동이 신중을 빌미로 느렸고
늘 생각이 게을러 안절부절 못했다.
이제는 행동하면서 생각의 여지를 마련하고
생각하면서 행동의 운동장을 마련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