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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13.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6회

노인, 홀로 떠나다

6



노인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침해가 방안 전체를 점령했음에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식후 제때 챙겨야 하는 약도 있는데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 뷔페를 놓치고 말았다. 어제 예정된 일정보다 발표가 늦어지면서 그 피로감이 누적된 것이다. 노인이 발표한 발제 제목은 "대한민국에서의 시낭송 교육과 평가에 대한 고찰". 앞서 다른 발제자들의 주제와 달리 많은 참석자들의 관심과 질의를 받은 것이 피로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매 짝수 해마다  <세계 시낭송 포럼>을 ABC순으로 개최하는데 지난 1,2회 아르헨티나와 벨기에에 이어 3회 개최국은 크로아티아로 정해져 열리는 중이다. 주로 학자들이 모여 각국의 시낭송 문화를 소개하고 여러 의견을 주고받는 이 포럼은 장르의 특성 때문인지 논쟁보다는 서로를 존중하고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어 포럼이라기보다는 심포지엄에 가까운 행사였다. 어제는 중요한 일정 마지막 날이라 한 이틀 가량 혼자만의 여행을 하겠다고 함께 온 일행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잠이 들었다.


정오 가까운 시각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은 마치 계획에 있었던 것처럼 짐을 가볍게 꾸리고는 숙소를 나왔다. 포럼이 열린 곳이 수도 자그레브였고 숙소도 행사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큰 길가로 나와 택시를 탄 뒤 행사 첫날 입실할 때 챙겨둔 로비에 비치된 지도를 운전기사에 보이며 버스터미널로 가자고 했다. 행선지를 반복해 말할 때 노인의 표정이 너무 익살스럽기도 하고 진지해서 기사는 동양에서 온 노인을 유심히 보더니 너털웃음을 웃었다. 비슷한 연배의 남자들끼리는 굳이 언어가  아니어도 마음을 주고받는 요령이 있는 듯했다. 잠깐의 이동이었는데 피를 나눈 동지의 눈빛으로 내릴 때 악수로도 아쉬운 듯 앉은 채 불편한 포옹도 했다. 잔돈이 제법 적지 않았는데 기사에게 거듭 손사래 치며 노인은 도망치듯 내렸다. 터미널에 도착한 노인은 행선지명으로 도시명이 아닌 오스트리아, 헝가리, 세르비아 등이 보여 순간 여기가 공항인가 잠깐 어리둥절했다. 잠시 고민하다 슬로베니아행 티켓을 끊고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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