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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14. 2024

길 아닌 건 문

0763

날마다 길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선택이 숙명인 우리는 길이 아닌 문 앞에 서기도 한다.


길은 발의 촉감으로 문은 손의 촉각이 결정적이다.


길이 이성의 갈피라면 문은 감성의 갈래이다.


길 앞에서 주저하는 것과 문 앞에서 주춤하는 것은 다르다.


길은 길 너머의 종착지를 염려하기에 끝이 문제다.

문은 문고리를 장악하는 것이 중요해 시작이 전부.


길에서의 선택을 문 앞에서 적용하면 낭패다.

문에서의 선택을 길 위에서 하다가는 실패다.


길 위에서의 지혜만 무성한 게 아쉽다.

사실 문 앞에서의 지혜가 더 절박하다.



길 아닌 건 죄다 문이다.


길은 방향이고 문은 리듬이다.


문고리를 잡고 열 것인가
두드릴 것인가
부술 것인가


길의 굽이만큼 문도 제각각 모양을 가진다.


문 앞에 선 막막함은 문의 굳건함과 비밀스러움에서 기인한다.


문이 소유한 방의 가치만큼 열쇠는 견고하다.


문이 은밀해지면 절차는 복잡해지고 허용이 제한적이다.


문의 무늬는 문이 가진 언어이자 수신호다.


비로소 문이 열리자 문의 등을 보이고 다른 공기를 웰컴티로 내민다.


다른 공간을 내주는 것이 문의 첫 번째 배려다.


문은 열 때와 닫을 때 입장이 사뭇 다르다.


열고 닫는 것이 문의 숙명. 그 사이의 오묘한 사건.


변덕스럽다는 오해를 받지만 문 다운 건 인정해야 한다.


문을 마주할 때마다 길을 만날 때와 달라야 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두 발로 길을 여는 것과 한 손으로 문을 여는 것.


우리 앞에 길보다 문이 더 많은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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