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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Dec 20. 2024

앙상한 의지

0922

당장이라도 함박눈물을 쏟을 하늘이다


레미콘이 육중한 제 몸을 돌리며 돌진한다


비뇨기과 광고하는 여자 성우의 목소리가 명랑하다


올초 다짐했던 계획들을 늙은 소처럼 반추한다


무엇이 나를 꾸준히 떠밀었는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오면서 본 길과 사뭇 다르다


얕은 바닷물에 담근 발이 모래로 덮인다


의지가 발의 일이었다면

나의 발걸음은 앙상하다

나의 슬픔은 절름발이다


자위하는 배우의 연극을 보고 돌아오는 대학로의 골목길은 스산했다


아픔은 애초부터 나눌 수 없는 분수들의 총합이었다


저기 자동차 밑에 웅크리고 있는 길고양이를 쓰다듬자 온기가 느껴진다


새해에도 올해만큼 허술할까 허전할까 허기에 허덕일까 허허허 지나가는 폐지 할아버지가 웃는다


생각보다 마무리는 명료하지 않다 모든 일이 대체로 그렇다 엿가락처럼 어금니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호의는 악수가 아니다 박수도 아니고 펭수도 아니고 지하수도 아니고 길 건너 옥탑에 살고 있는 철수도 아니다


여전히 하늘은 뚱하다


뭐라고 말을 붙여야 할지 몰라서 전깃줄에 새들을 줄 지워 세운다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만 고작 그거 보여주려고 폼을 잡은 거냐

새들은 혼자서는 침묵하지만 여럿 모이면 인간의 언어를 곧잘 흉내 낸다


여태껏 1년이 365일인 줄 알고 너무 여유 부린 자신이 초라하다


잠의 개수와 날의 개수가 일치하지 않음을 알고 달력을 다시 넘긴다


그래서 년도가 1년이 끝날 지점에 다다라도 입에 잘 붙지 않았구나


잘 모르겠으면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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