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렇게 간사하지 않았잖아요
저자가 된다는 건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저 제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내면 행복이 차고 넘칠 줄 알았는데요. 막상 책이 나오면 출간에 의의를 둔다는 생각이 쏙 들어갑니다. 아침에 눈 뜨면 온라인 서점에 책이름을 검색합니다. 순위가 오르면 저절로 미소 짓습니다. 어제보다 등수가 내려가면 잠도 깨지 않았는데 벌써 불쾌합니다. 스포트라이트의 지속광이 아닌 섬광이 비추는 삶입니다.
누운 채로 오늘의 순위를 캡처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순위는 오르락내리락. '네이버 책' 검색 결과에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었다가 사라집니다. 깜빡, 반짝하다 다시 사라집니다. 한 번이라도 베스트셀러가 되어봤으니 괜찮다고 웃고 넘깁니다. 네모 박스가 깜박 깜빡해도 저라는 사람은 결코 꺼지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실은 속으로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손발이 시리고 마음도 춥습니다.
응원은 됐으니 책이나 좀 사주세요.
원래 이렇게 간사하지 않았잖아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겠다고 했잖아요. 죄송합니다. 책만 내면 그만이라는 발언을 철회합니다. 저자가 되고 나니 주식투자가 시시해질 정도입니다. 회사에서 몰래 체크하던 주가 차트보다 서점 홈페이지를 많이 들어갑니다. 제 책 보다 상위권에 있는 책을 보며 질투합니다. 이제 출간 3주 차인 초보 저자가 경력 십수 년 차 베스트셀러 작가, 유명인이 쓴 책과 순위 다툼하며 혼자 쉐도우 파이팅을 하는 광경입니다.
책을 쓰기 전에는 그저 모든 게 행복한 투정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저자로서 자기 책을 쓰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팔 수 있는 책이 있는 사람은 어쨌거나 복 받은 처지이지 않은가 말입니다. 서평단에 보낼 책을 이틀에 한 번 꼴로 주문합니다. 똑같은 책을 80권씩 주문해보기는 또 처음입니다. 잠 줄여가며 손수 포장한 택배를 우체국 택배로 직접 부칩니다. 물론 모든 비용은 자부담입니다. 밤에는 포장하고 낮에 택배 부치고 주말엔 서점에 영업 갑니다. 지난주엔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했잖아요. 원래 이러지 않았잖아요.
인간관계 분야 80위로 차트인. 다음 날 66위가 되더니 며칠 뒤엔 28위. 하룻밤 자고 나니 24위로 올라간 순위를 보며 으쓱했습니다. '이러다 10위 권, 1위라도 하면 어떻게 무덤덤한 척 자랑해야 하나?' 기우라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신간 도서가 수백 권씩 쏟아진다는 사실을 망각했었죠. 내 책만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줄 아는 팔불출 저자의 인과응보입니다. 서평단 책을 발송한 지가 한참인데 아직 깜깜무소식인 텅 빈 리뷰 창을 보면서 속이 타들어갑니다. 왜 이러세요. 평소에 적립금을 퍼준대도 리뷰 한 글자에 인색했었잖아요.
관심 가는 신간이 동종 분야인걸 보고 장바구니 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멈추고 머뭇거립니다. 세상에, 원래 이런 인간이 아니었잖아요. 제가 아는 저란 사람은 적어도 이보다는 고상하고 기품 있을 줄 알았어요.
초보 저자 정어리의 조언 ⑭
첫째, 상처받지 말 것. 둘째,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버릴 것. 셋째, 타인과 비교하지 말 것.
이제 막 태어난 새끼 톰슨가젤처럼 멘탈이 연약한 초보 저자라면 꼭 명심하세요. 이 세 가지를 지키지 못하면 저처럼 심신이 피폐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