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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Mar 25. 2022

인스타그램에 서점을 태그 하면 일어나는 일

식은땀이 줄줄 나고 손발이 덜덜 떨린 이유는?

저는 제가 특별한 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내는 사람은 한 달에 수백 명씩 쏟아진다고 해도 모든 저자가 저처럼 지점마다 영업을 다니지는 않으니까요. 비슷한 기간에 출간한 동종 분야 저자 분들의 SNS를 구경해봤지만, 무식하게 몸으로 홍보하는 사람은 저뿐인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다른 분들은 제가 몸으로 구르는 동안에 온라인 마케팅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그게 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누가 봐도 처절하게 오리발을 버둥거린 노력에 비하면 이상하리만큼 물결은 잠잠했습니다. 


하긴, 서울에 있는 국민은행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창구에 가서 만 원씩 입금한들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혼자 외로운 영업을 다니는 저자는 서점 입장에서 그다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출판사 직원도 아닌데 좀 특이한 사람이다'라는 인상은 줬을지도 모릅니다.  


'이상하다. 이게 아닌데…. 뭐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기계가 오작동할 때 스위치를 껐다가 한 번 더 켜보듯이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SNS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수도권부터 부산까지 아직 가보지 못한 서점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모두 태그 하는 미친 짓을 저질러버린 거죠. 그랬더니 이런 댓글이 하나 달렸습니다.


kyobobook_pangyo @sardine.jw 저희 점에 다시 방문하시면 연락 주세요~

이런 행동은 서점 SNS 담당자를 매우 귀찮게 할 수 있으니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


방금 전까지 2021년의 손꼽히는 관종 저자였던 저이지만 막상 멍석을 깔아주니 겁부터 덜컥 났습니다. '다시 오라는 말도 아니고 다시 방문하면 연락을 달라니, 연락하라는 말은 만나자는 걸까?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지? 같이 사진이라도 찍어야 하나?' 적어도 서점 SNS 계정 담당자를 만나서 해코지를 당할 일은 없으니 너무 쫄지 말자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아니, 역시 함정일까요? 사전 약속도 없이 MD를 만나 귀찮게 한 것도 모자라 SNS에 후기를 올려대는 풋내기 저자를 불러서 따끔하게 경고하려는 덫인 걸까요? 


죄송하지만 요즘 너무 나대시는 것 같습니다. 저자님…. 전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서점에 그렇게 불쑥 찾아가서 사진 찍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물론 이런 말을 들을 리는 없었습니다. 상대는 보안 담당 직원이 아니라 SNS 담당자입니다. 머릿속으로 500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끝에 같은 MZ세대 또래 직원을 만나 "작가님의 책과 교보문고 판교점을 어떻게 연계해서 알려볼까요? 하하호호"하는 분위기를 상상해버린 저. 겁도 없이 판교 현대백화점 지하에 제 발로 찾아갔습니다. 직원 분의 뒤를 따라가 문을 열고 토끼굴 같은 통로를 지났더니 매장과는 사뭇 다른 수수한 분위기의 사무실에 다다랐습니다. 이윽고 등장한 사람은 SNS 담당자도 MZ세대도 아닌 판교점의 점장님이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막혔던 온몸의 땀샘이 개통되며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음주도 안 했는데 갑자기 혈액순환이 원활해졌습니다. 어째서 저는 서울에서 판교까지 와서 서점 사무실에 앉아 점장님과 독대를 하고 있는가. 사정은 이러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서점 방문객 감소, 대형서점 반디 앤 루니스의 충격적인 부도, 온라인 서점 고객 증가, 전자책 대중화라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점장님은 오프라인 공간으로서의 서점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신인 저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도 고민 중 하나였던 거죠. 그런 와중에 요즘 같은 시대에 아직도 저와 같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영업을 다니는 저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고 제 SNS에 댓글을 달았던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신간이 쏟아져 나오고 얼마 지나면 가라앉는 게 사실이라고 점장님은 말했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멀리서나마 응원한다. 서점을 돌아다니며 알리는 방법에 대해 49명은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51명은 좋게 볼 수도 있다. 본인은 그 51명의 편에서 지켜보겠다는 훈훈한 말씀도 들었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오늘 같은 무거운 주제 대신에 웃으면서 "이번에는 같이 뭐 할까요?"라고 이야기하며 희망적인 논의를 하자고 점장님은 말했습니다. 그러려면 다음번엔 초대박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있어야 할 텐데 어쩌죠.


언제쯤 저는 서점 관계자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점장님의 말씀처럼 제가 지금 헤엄치고 있는 건지 침몰하고 있는 중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긴 한 걸까요. 주인공이 맞다면 성공은 언제 할 수 있는 걸까요? 만화 <원피스>에서도 샹크스가 주인공 루피에게 위풍당당한 해적이 돼서 돌려주러 오라며 자신의 밀짚모자를 맡긴 뒤로 24년째 자외선 차단을 못 하고 있잖아요….


이 모자를 네게 맡기마. 나의 소중한 모자다. 나중에 꼭 돌려주러 와라. 위풍당당한 해적이 돼서 말이다. - 샹크스가 루피가 해적이 되기 전에 마을을 떠나며 남긴 말 - 


초보 저자 정어리의 조언 ⑯
서점 SNS 계정 담당자를 조심하세요. 그는 평직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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