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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Mar 24. 2022

서점 영업은 신문 배달이 아니다

이건 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카페 테이블 위에 책을 올려놓고 카메라를 회피한 채 어딘가를 응시하는 시선…. 우아하게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모습. 본인의 책이 진열된 서점 매대 앞에 서서 수줍은 듯 짓는 미소. 이런 모습들이야말로 출간 작가다운 모습이 아닐는지요. 비록 작가 지망생이지만, 책만 나오고 나면 별 볼 일 없는 저의 SNS를 있어 보이는 이미지들로 채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결론은 '그런 일은 일어날 일도, 일어날 수도 없다.'였습니다. 혼자 하루에 서울 도심 수십 km를 돌아다니는 영업인에게는 감성적인 사진을 찍을 여유도 체력도 없습니다. 내향인에 관한 책을 쓴 아싸 저자답게 동행 따위 있을 리 없습니다. 셀카용 삼각대를 티 나지 않게 갖고 다니다가 인적이 드물 때 재빨리 인증샷을 찍는 방법이 최선. '내향인이냐, 관종이냐' 둘 중에 어느 쪽이냐고 물으신다면 둘 다 맞다고 답하겠습니다. 초보 저자라면 누구나 성향에 상관없이 관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온라인 홍보를 제대로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저의 '영업 일기'는 인터넷에 남길 수 있는 최소한의 발자국이었거든요. 


집 앞 700m 지점에서부터 시작한 교보문고 순회를 이렇게나 계속할 줄은 몰랐습니다.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사람들의 관심과 저의 관종력이었습니다. 영업을 다니면서 겪는 소소한 기쁨, 예상치 못한 반전, 무명 저자의 설움이 쌓여갈수록 인스타그램에 공유할 스토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타인의 공감과 응원은 코브라를 춤추게 하는 마술피리처럼 아무리 지친 날에도 영업을 나갈 수 있는 뽕(?)을 주기적으로 주입해주었습니다. '이제 해치웠나? 끝인가?'라고 생각할 때쯤에 지인 팔로워분이 건대입구점이 새로 오픈했다고 알려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건대점과 서울대 교내서점, 이화여대 교내서점까지 아직도 세 곳이 남아있었습니다. 학생들만 찾는 교내서점까지 인사를 드리러 와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디까지, 언제까지 돌아다녀야 하는지 잠시 고민을 해봤으나 한 가지는 명확했습니다. 처음부터 저에게 영업을 떠나라고 등을 떠민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이죠. 그곳에 서점이 있으니 가야 할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몸이 힘들수록 나날이 차트 위에서 요동치며 위태한 행보를 보이는 저의 책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건물을 헷갈린줄도 모르고 당당하게 찍은 사진(좌), 닫힌 서점 앞에서 망연자실한 모습(가운데), 굳게 닫힌 문 밑으로 찌라시(?)를 밀어넣는 모습(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서점 영업시간을 숙지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회사일과 개인사로 지쳐서 느지막이 집을 나섰더니 도착할 때쯤엔 이미 서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교내 서점은 주말에 문을 일찍 닫습니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고민하다 학생회관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자료와 명함을 담은 파일을 문틈 사이로 찔러 넣었습니다. 뒤돌아서고 후회했습니다. 제가 직원이라면 바닥에 널브러진 자료를 보고 좋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요. 첫인상을 휙 던져버린 건 아닌가 하는 찝찝함이 남았습니다.



결국 다음 주에 또 갔습니다. 이 열정으로 고등학생 때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 졸업생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버스를 타고 산길 중턱까지 올라가야 있는 학생회관 서점. 이번엔 직원분을 뵙고 인사도 확실하게 했습니다. 지난주에는 0이었던 재고 숫자가 2가 되어있었습니다. ' C7 - 요즘 이 책!' 코너에 제 책이 뭐라고 왼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삼수생이라도 된 듯 기분이 째졌습니다. 힘이 나서 이화여대 점과 건대입구 점도 단숨에 다녀온 저는 이 날로 교보문고 서울 전 지점을 다녀온 저자가 되었습니다. 서울 순회를 마치면 게임 퀘스트처럼 교보문고 본사에서 어떤 칭호라도 내려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습니다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그만둬야만 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전국 투어라도 가는 거냐"는 인스타그램 지인 분의 도발에 넘어가지 말았어야 하는 거였죠. SNS에 서울을 제외한 모든 교보문고 계정을 태그 하는 호기로움을 넣어둬야 했어요. "어디서든 저를 불러주시면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그 과정을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서점 홍보도 해드리겠다"는 기행을 저지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초보 저자 정어리의 조언 ⑮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릴 때 서점 공식 계정을 태그 하는 당신, 각 서점 SNS 담당자들은 그런 당신을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나친 태그 행위는 이불 킥을 부를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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