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심봉사와 토비트. 이들은 태어난 배경도 능력도 가치관도 전혀 다른 인물이다. 심봉사는 양반 가문의 자손이기는 하나 빈궁한 처지의 가난한 선비로 조선시대 유교집단의 무능력한 한 전형을 보여준 인물이라면 토비트는 고대근동의 이스라엘인으로 제국의 지배 아래서도 벼슬길에 오른 능력자인 동시에 민족의 율법을 지키고 자선을 베푸는 일에도 모범적 인물로 언뜻 봐도 심봉사와는 비교불가의 핵인사다. 그럼에도 굳이 이 두 남자를 함께 다루려는 까닭은 이들과 이들의 주변부에서 벌어지는 수상한 사건들이 묘하게 닮았기 때문이다.
둘은 선천적인 장님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잃고 자식들에 의해 시력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식들이 모두 강물에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다. 심봉사의 딸 심청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고, 토비트의 아들 토비아는 강에서 이상한 물고기에게 잡아먹힐 뻔하는 곤욕을 치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식들은 약속이나 한 듯 혼인을 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와 이들의 시력을 회복시킨다. 기이한 닮은 꼴 아닌가. 두 남자가 눈이 멀게 된 이유도 석연치 않고 이들이 눈을 뜨게 된 여정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전혀 다른 지역의 설화임에도 이렇게 닮은 공통요소가 등장한 연유는 무엇일까. 두 집안이 만난다면 서로의 사정과 심중을 우리보다 더 잘 헤아리며 공감할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멀고 자식들이 죽을 고비를 넘겨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여정엔 어떤 맥락이 숨어 있는 것일까. ‘시력 잃음’ ‘강물’ ‘혼인’ ‘시력 회복’의 여정은 우리 삶에 실재하는 어떤 여정을 형상화한 것일까.
아울러 치성이면 감천이라지만 도대체 어떤 치성이 하늘을 감동하게 하는지, 죽은 자도 살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신은 언제 어떻게 만난다는 것인지도 알고 싶다.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단지 허구가 아니라 인생의 진실이나 진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라면 동서양 설화 속에 나타난 신의 표상은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을 의미하는 것일까. 또한 동서양 설화 속에 등장하는 신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신일까. 아니면 사회 문화적 맥락의 차이에서 비롯된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는 같은 신일까. 본형이 같다면 우리는 왜 신의 이름으로 이토록 열심히 싸워대는 것일까. 추적은 내 인생만큼 어설픈 채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정 자체를 즐기기로 한다. 남이 떠 먹여준 해석을 덥석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로, 내가 살아온 경험치로 이해해 보고 싶어서다.
( 이 글은 어쩌다 옛이야기 읽기에 재미를 느낀 입문자가 꼬리의 꼬리를 물며 궁금증을 풀어가는 서툰 독법임을 전제한다. 옛이야기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정답보다 풀이 과정을 즐기고자 하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은 대화라고. )
덧. 심청전과 토비트는 오랜 세월 구비 전승되어 온 옛이야기의 원형이 사회문화적 맥락을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온 설화문학의 범주에 속한다. 심청전이 오랜 세월 우리 민족에게 전해 내려오던 다양한 설화 양식(개안 설화과 인신공희 설화, 재생 설화 태몽 설화 등)이 심청의 효행이라는 표면적 주제 안에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심층의 의미를 낳는 문학 작품이라면 토비트는 성경(가톨릭 경전)에 수록된 작품으로 고대근동 지방(그리스, 페르시아, 바빌로니아 등)에서 유행한 설화 양식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고대 근동의 설화들을 모태로 기원전 2세기 무렵 유대민족에 의해 재탄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경에 실린 토비트와 달리 심청전은 소설, 판소리, 무가 등 다양한 형태의 이본으로 변화무쌍하게 개작되어 온지라, 해석의 기준을 완판본으로 삼았음을 미리 밝힌다. 명나라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심현과 그의 처 정씨가 등장한 작품으로 심청의 효와 유교적 가치가 이상적으로 그려진 경판본과 달리 완판본 계열은 고려 황주 도화동을 배경으로 심학규와 곽씨 부인이 등장한다. 심지어 아내도 무려 셋이 출현한다. 완판본을 선택한 까닭은 서사구조의 골격은 본형을 유지하면서도 뒤집기 한판이 숨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완판본의 경우 전후의 혼란을 거치며 이상화된 유교 질서와 현실적인 가치가 충돌하는 혼돈의 시간을 드러내어 보여준다는 점에서 구약과 신약 사이의 암흑기 작품인 토비트와 함께 다뤄 볼 가치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두 눈먼 자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