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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제물이 되기로 작정한 심청.

- 효심에서 비롯된 자발적 선택이라고?

by 지크보크

심청은 왜 제물이 되기로 작정한 것일까.


“ 이 무정한 사람아. 내가 너를 자식으로 여겼는데 너는 나를 어미같이 아니 아는구나. 백미 삼백석에 몸이 팔려 죽으러 간다 하니 효성은 지극하다마는 네가 죽어서야 될 일이냐 나와 의논했으면 진작 주선하였지 백미 삼백석을 내어줄 터이니 선인들 도로 주고 망령된 말 다시 말라.”


심청은 인당수에 몸을 던질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말했듯 장승상 부인의 수양딸이 되면 될 일이었다. 부인은 공양미 삼백석을 얼마든지 대신 내줄 수도 있었다 부인은 심청이 뱃사람에게 팔려 간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이 지경이 되도록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심청을 나무라며 삼백석은 자신이 보낼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리하면 될 일이었다. 부인은 수양딸 삼고 싶어 했고, 심봉사도 이 말을 듣고 안도했으니 셋 모두 만족할 만한 해법이 있었다. 그런데 이 해법에 어깃장을 놓은 건 심청이다. 왜일까.

“당초 말씀 못한 일을 후회한들 어찌하오리까. 또한 공을 빌 양이면 어찌 남의 무명색한 재물로 대신하길 바라리까. 백미 삼백석을 내어준다 한들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선인들에게도 낭패일 것이니 그 또한 어렵사옵니다. 부인의 높은 은혜와 착하신 말씀은 감사하나 죽어 저승으로 돌아가서 결초보은 하오리다.”

그녀가 장승상 부인에게 밝힌 거절 사유다. 먼저 치성은 돈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는 백미 삼백석으로 눈을 뜰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아버지의 믿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이다. 동시에 신이한 이적을 미끼로 이득을 취하고, 자기 몫의 치성을 사람 사다 바치는 것으로 대신하는 당시 세태를 고발하는 발언이다. 과연 곽씨 부인의 딸다운 돌려 까기 신공 아닌가.

이어 그녀는 이미 약조한 이상 나 살자고, 내 편의대로 선인들을 곤란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신의는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륜과 도리는 공동체 유지를 위해 서로 약속한 사항이다. 관계의 도다. 그런데 인륜과 도리를 가르친 당신들이 지금 내게 하고 있는 짓이 무엇인가. 효를 명분으로 각자 자기 욕망을 위해 나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데 적당히 눈 감고 동조한 꼴 아닌가. 목숨값을 지불했으니 죄가 없는가. 내심 따져 묻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부인이 주겠다고 한 공양미 삼백석을 받지 않았다. 남이 자기 몫의 책임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은 그들처럼 내 몫의 치성을 타인에게 대신 감당하게 하는 짓 따위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선언이었다. 자신을 힘들게 한 아비와 세상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세상을 향해 빅엿을 날리고 싶었는지도 .

부인은 그녀를 진심으로 아꼈지만 그녀는 그조차 자신이 갚아야할 채무로 여겼던 듯 보인다. 저승에 가서라도 결초보은 하겠다니. 의무에 짓눌려 살아왔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그러니 부인의 조건없는 지지도 온전히 믿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녀는 인당수에 몸을 던지며 끝없이 자신의 불효를 고백했다. 효행의 실천이 결코 아니었다. 자신의 행위가 아비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일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무정하고 독한 것. 그것이 심청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진단일지 모른다. 탄식하는 아비에게 그녀는 말했다.

부자간 천륜을 끊고 싶어 끊은 것이 아니라고. 모두 하늘의 뜻이라고. 인정으로 할 양이면 떠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심청의 죽음은 유교의 상징적 덕목인 효행의 미덕이 도리어 가장 끔찍한 불효를 낳고 마는 모순과 역설의 상황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가 효의 시작”이라 했는데 심청은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신체를 부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당대를 지배해 온 집단 윤리에 대한 자기부정이자 해체였다. 심청은 효행을 실천한 것이 아니라 효라는 명분 뒤에 감춰진 가부장적 봉건 체체와 무지와 탐욕이 낳은 희생 제물의 대물림 현상을 목숨을 걸고 고발한 것이다. 악법도 법이라서 죽은 게 아니라 제 죽음을 통해 그것이 악법임을 깨닫게 한 것이라고. 심학규가 봉사로 등장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유교적 지배 윤리에 예속된 인물인 그의 의식이 인습(因習)적 차원에만 머물러 인의 근본정신을 바로 보지 못하는 맹인임을 상징하는 장치였을 것이다. 그것이 이 집안과 그 사회의 비극을 불러들인 원흉이라고.


효를 행하겠다는 그녀를 아무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했다.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고 순응하고 처량하다고 통곡할 뿐이었다. 인정은 넘치나 근본을 묻고 따지는 정신은 빈곤한 사회였다. 유불도 사상의 근본정신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사회였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빚어내는지 보여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심판이자, 부조리한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심청은 집단의 그림자를 온몸으로 지고 강물로 뛰어들어 버린 것이라고.


그런데 이를 하늘도 감동한 효행의 표본이라 배웠으니 기가 찰 노릇 아닌가. 지금이라고 다를까. 입시지옥의 굴레에서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후 죽거나 종적을 감춰버리는 아이들,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닌 기성세대가 옳다고 여기는 기준을 강요당하고, 그들이 만든 시스템 속에서 원치 않는 삶을 혹사당하고 있는 그들 모두가 심청이와 같은 그림자를 떠안고 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앞서 제시한 지성과 감천이 설화를 기억하는가. 공동체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두 갈래의 길.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며 함께 상생할 것인가. 아니면 눈앞의 이익을 좇아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으며 공멸하는 길로 들어설 것인가.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를 묻고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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