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를린부부 Feb 28. 2019

전단지로 배우는 독일어

by 베를린 부부-piggy

전단지는 나의 힘 by piggy

나는 독일어 초보자다. 말이 초보자이지 눈치와 혼자만의 깨달음, 결심을 반복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동화책을 읽기에도 벅찬 수준인데 내가 꼬박꼬박 챙겨보는 것이 있다. 바로 다양한 슈퍼마켓의 전단지다. 베를린에는 정말 많은 슈퍼마켓이 있는데 각 마켓들은 한 주의 세일 상품 등을 신문 수준으로 만들어 배포한다. 어디에서 어떤 제품을 세일하는지, 어떤 새로운 품목이 어디에 들어왔는지 하나하나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 집을 기준으로 걸어서 3분 거리의 에데카(EDEKA), 10분 거리의 알디(ALDI), 15분 거리의 리들(LIDL)과 레베(REWE)가 있다. 4개의 슈퍼마켓은 독일에서도 큰 체인인데 각각의 자체 상품도 생산한다. 이 상품들은 한국의 이마트의 노브랜드나 롯데마트의 통 큰 피자, 치킨처럼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흔히 말하는 가성비가 좋은 상품들이다.

우리 집 근처의 슈퍼마켓들 by piggy


에데카는 집에서 가깝기 때문에 물, 음료 등의 무게가 나가는 제품을, 알디에서는 쌀과 식기세척기 세제를, 레베에서는 와인을, 리들에서는 마카롱 등의 디저트류를 주로 구입한다. 특히 레베에서 나오는 알레그로(Alegro) 와인은 우연히 마셔보고 빙고를 외쳤다! 스페인의 리오하(RIOJA)의 와인이라기에 호기심에 한 번 구입해 봤는데 우연치고는 상당히 그 품질이 훌륭해 여기저기 추천을 하고 다닐 정도다. 이 와인은 믿고 마신다는 리오하 지역의 제품으로 레베가 그곳 와이너리 한 곳과 전속계약을 해서 독점으로 생산하는 제품이다. 가격은 무려 3.99유로. 아직까지 저 가격대의 와인 중에서는 더 좋은 것을 찾지 못했다. PPL처럼 와인을 제공받으며 이렇게 후하게 써주고 싶지만 사실 우리 부부와 아무 상관없는 제품으로 그냥 우리 취향에 맞을 뿐이다.

우리 부부의 최애 와인, 알레그로 by piggy

나에게는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이기도 한 슈퍼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위에 언급되지 않은 비오(BIO) 마켓, 아시아 마켓부터 한국에서 이미 유명한 드록스토어 데엠(DM)이나 로스만(ROSSMANN)까지 다니려면 항상 시간이 모자라다.


한편 우리 부부는 화장품 종류도 이것저것 실험을 하는 중이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물론 이것도 우리 부부의 기준이긴 하다.) 까다로운 신랑의 피부는 건조하기까지 해서 나보다 더 바디제품에 신경을 써 줘야 하는데 내가 우연히 발견한 임산부용 제품들이 의외로 신랑에게도 잘 맞아서 같이 쓰고 있다.

(좌) 나보다 신랑이 더 잘 쓰는 튼살 크림 (우) 임산부 오일 by piggy

전단지와 각종 앱을 번갈아보면서 다니다 보면 의외로 배우게 되는 단어가 많다. 샴푸 하나를 사더라도 이게 건성용인지 지성용인지 탈모용인지 수많은 정보가 패키지에 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패키지 디자인 수업을 하다 보면 디자인은 둘째고 넣어야 될 정보가 너무 많아서 이걸 누가 읽는다고 다 넣냐고 불만이었는데 그걸 내가 다 읽고 있다.


오늘 본 단어를 다음번에 기억한다는 보장은 없다. 어디서 봤는데 뜻이 뭐였지 정도면 양반이다. 생전 처음 본 단어인 양 핸드폰으로 검색하기 바쁘다. 그렇게 두 번 찾고 열 번 찾고 하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진 단어가 생긴다. 20대 초반에는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며 스페인어를 배웠다면 이제는 전단지와 쇼핑으로 독일어 단어장을 채워가는 중이다.


오늘도 나는 휴지와 물티슈를 사러 마트에 간다. 아침에 본 전단지의 상품을 구경하고 어제도 읽었을 듯한 단어를 또 사전으로 찾아보면서 말이다.

 


"건축사무실에서 일하는 신랑과 임신 34주 차 독일어 까막눈의 아내가 살아가는 베를린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인스타그램 @eun_grafico


이전 02화 베를린의 반려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