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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Mar 21. 2019

독일의 TV, 그 적나라한 세계

by 베를린부부-Piggy

인증이 필요해 by Piggy


어느 날 신랑과 TV를 봤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재밌을 것 같은 드라마를 선택했는데 16세 이상 시청이 가능하니 성인인증을 위한 로그인이 필요하다는 화면이 떴다. 그때가 한 낮이었는데 밤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는 로그인 없이도 시청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이었다. 로그인이란 다들 그렇지 않은가. 아이디를 찾고 비밀번호를 찾아 떠나는 끝없는 모험의 세계. 더군다나 우리의 아이디는 성인인증이 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굳이 그 모험의 세계에 떠나지 않기로 하고 다른 프로그램을 보기로 했다.


16세 미만 프로그램의 흔한 살인 장면 by Piggy

하지만 내 생각은 그저 초짜 독일 생활자의 너그러운 마음이었을 뿐! 성인인증이 필요하지 않은 다른 프로그램을 보는데 살인, 폭력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 다 보여줄 거면 굳이 왜 성인인증 프로그램이 따로 있는지, 그럼 대체 성인인증이 필요한 프로그램은 대체 얼마나 다 보여준다는 것인지.


그러던 어느 날, 한가로이 오전에 TV를 틀었던 날, 독일의 적나라한 프로그램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컴온, 섹시 베이베 by Piggy

성인인증 프로그램에서 말했던 시간대가 아닌 평범한 낮시간, 정규방송에서 본 장면은 내 눈을 의심했다. 나체의 여성들이 우르르 나와서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던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내가 특정 채널을 잘못 틀었나 싶었다. 간혹 내가 들어가서 보는 독일 카페에서 이 곳 TV 방송이 너무 적나라해서 오전에 아이들과 함께 보기가 무섭다고 아예 틀지 않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바로 이런 상황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간단하게 밤 10시 이후의 프로그램을 들여다봤다. 대체 무엇이 기준인지, 어떤 장면들이 등장하는지 궁금했다. 잔인하고 잔혹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제야 조금 이해가 갔다.

가만히 독일의 TV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체의 모습이 등장하는지 아닌지가 성인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의 기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보다 '인간의 존엄성'이 기준이 되는 것 같다. '인간의 존엄성' 심각하게 침해된 살해 장면에 대해 경각심 차원에서 '있는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 굳이 똑같이 재현해서 '알릴 필요는 없다' 식으로 의견이 나뉠 수 있다. 이 두 가지 의견을 바탕으로 한 장면들은 TV에 각기 다르게 모두 등장하고 시청자들이 알아서 선택하는 식인 것이다. 그러니 단순히 '나체가 등장하면 성인컨텐츠'라는 생각은 나의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도리어 낮 시간대의 컨텐츠는 계속 보고 있자니 분명 선정성이 가득한 느낌인데 기분이 묘하게 나쁘지 않다. 여자를 훔쳐보고 상품화한 느낌보다는 건강한 나체의 사람이 나오는 느낌이다.


그러나 저러나 아이들에게 TV는 하루 10분이면 충분하다는 독일 엄마들이 많다는데 독일 TV 프로그램이 그닥 재밌는 게 없어서 보여줄 만한 것도 많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저런 게 있다 싶은 정도로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건축사무실에서 일하는 신랑과 임신 37주 차 독일어 까막눈의 아내가 살아가는 베를린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인스타그램 @eun_graf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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