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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Mar 07. 2019

베를린의 새로운 공휴일 "여성의 날"

by 베를린 부부-piggy

"International Woman's Day" by Piggy


2019부터 베를린에 새로운 공휴일이 하루 더 생긴다는 소문은 작년 연말부터 돌았다. 심지어 달력에 빨간 표시도 되지 않은, '잉크도 마르지 않은' 베를린의 새로운 공휴일은 "세계 여성의 날" 3월 8일이다. (생각해보니 새로 구입한 달력이 베를린이 아닌 지역에서 생산되었으면 거긴 공휴일이 아니니 표기가 안 된 것일 수도 있다.) 빨간 날이라고 하면 그저 신랑이 출근 안 하는 날이라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세계 여성의 날'이 공휴일로 새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그 새로움과 생소함에 관심이 더 간다.


독일의 다른 지역보다 베를린의 공휴일이 적어서 어떤 날을 지정해야 될지, 종교개혁의 국가인만큼 성경적인 날을 새로 추가해야 된다는 주장부터, 공휴일을 늘려야 하는지 아닌지 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었다고 한다. 그 후보들 중에서 "세계 여성의 날"이 뽑히다니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아내는 신랑의 동의를 받아야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실 독일의 여성인권도 권리를 주장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듯하다.


어학원을 다닐 때 교재에 직업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남자는 비행사, 의사 등을 주를 이루고 여자는 간호사, 주부 등으로 묘사되었다. 50대의 베를린 토박이 남성이었던 당시 학원 선생님은 이 페이지는 시대와 너무 동떨어졌다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여자가 하는 일, 남자가 하는 일이 정해져 있지 않는 시대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인식의 흐름이 아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곳곳에 구멍이 있다고.

"for my Super Baby" by Piggy

나의 아기는 이제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세상에 나올 것이다. 모두가 남자아이라고 생각하는 태명을 가진 여자 아이다. 나는 내가 딸을 가진 것을 안 뒤로 예전보다 더 여성의 인권을 고민하게 된다.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싸워서 찾아오고 있는 권리가 어떤 부분이 있는지, 사소하게는 어떤 단어는 쓰면 안 되는지까지 얕은 수준이나마 알아가려 노력 중이다. 엄마는 항상 청소를 하고 밥을 하고, 아빠는 넥타이를 매고 출퇴근을 하는 그림을 보고 자란 세대라 나도 모르게 익숙해서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못했던 부분을 알아가는 중이다. 가끔 신랑과 같은 것 같지만 다른 교육의 흔적으로 인해 충돌이 있기도 하지만 최대한 나의 딸에게는 무언가를 '당연하게', '습관처럼'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우리가 범한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한걸음만 나아가도 우리 딸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질 거라는 소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독일에서 최초로 베를린이 "여성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는 소식이 참 반갑다. 나처럼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사람들에게 공식적인 정부의 정책은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해 준다.  비록 겨울 내내 회색의 날씨와 부족한 독일어로 하루하루 살고 있지만 말이다.



"건축사무실에서 일하는 신랑과 임신 35주 차 독일어 까막눈의 아내가 살아가는 베를린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인스타그램 @eun_graf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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