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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Feb 21. 2019

베를린의 반려견

by 베를린 부부-piggy

베를린에서 처음 다녔던 어학원의 우리 반에는 어떤 여학생을 따라 함께 등하교를 하는 반려견 "두두"가 있었다. 책상 밑에 누워서 우리가 수업하는 걸 지켜보기도 하고, 잠도 자기도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쉬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처음 두두가 등교하는 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선생님을 쳐다봤던 것 같다. 정작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던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나의 한국 집에는 큰 반려견이 있다. 사실 내 눈에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데, 으례 무서워하는 사람도 많았고 목줄을 하고 있음에도 거리에서 시비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름은 "뿔뽀", 잉글리시 불독이다. 큰 덩치 때문에 어디를 가든 주목받는 일이 많았고 그만큼 피곤한 일도 많았다. 목줄이나 입마개로 인한 사고와 시비가 많았던 사회에 익숙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사람이 많은 곳에 반려견이 들어오면 괜히 눈치를 봤다. 나의 반려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서 두두가 처음 학원에 오던 날 내가 더 안절부절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학원 오는 두두를 반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까지 반가워한다는 걸 알게 된 뒤로 거리에서, 대중교통에서 베를린의 수많은 반려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부러워하고 있다. 나의 반려견, 뿔뽀가 느껴보지 못했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이 베를린의 반려견에겐 있다. 


카페나 음식점에 반려견을 데리고 가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 물론 출입금지인 곳들이 있다. 하지만 실내가 아닌 야외 좌석에서는 대부분 허용하고 있고 물그릇이 문 앞에 항시 준비되어 있는 곳들도 많다. 오고 가며 물을 마시고 쉬어가기도 한다. 


우리 집 앞에 슈퍼 문 앞에는 보통 한두 마리의 반려견이 기다리고 있다. 이 시간쯤 가면 오늘은 까맣고 꼬리에 무늬가 있는 애가 있겠다 하면 정말 문 앞에 그 아이가 있곤 한다. 의도치 않았지만 나와 견주의 스케줄이 잘 겹치는 경우, 갈 때마다 보기도 한다. 그러면 괜히 또 반갑고 처음 보는 반려견이 있으면 쟤는 누구랑 왔나 하고 궁금해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슈퍼 문 앞에 그냥 기다리는 반려견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장보고 있는 동안 누가 데리고 가면 어쩌지, 다른 개와 시비가 붙으면 어쩌지, 누가 와서 시비 걸거나 못되게 굴면 어쩌지 하는 나 혼자만의 걱정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어이없게도 내가 익숙해진 건 단순하고도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반려견에게 다가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설사 이쁘다고 가서 쓰다듬는 것조차 없었다. 특별한 대상이라기보단 그저 당연한 사회 구성원 중 하나로 인정해주는 느낌이랄까. 그렇다 보니 기다리고 있는 반려견도 자기 견주가 언제 나오나 신경 쓰고 있느라 다른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습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단순하고도 당연한 사실은 반려견과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나도 우유 한잔 주문해주면 안 되겠니, 소시지도 꼭 사 와주길 by Piggy


베를린의 대중교통은 개와 함께 동승할 수 있다. 요금은 견주가 갖고 있는 티켓에 따라 달라진다. 정액권의 경우 성인 1명이 반려동물 한 마리를 데리고 탈 수 있다. 미취학 어린이가 무료로 부모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느낌이랄까. 일회권으로 따로 구입할 때는 어린이 요금 정도이다. 처음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뭔가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확한 요금이라고 생각했던 건 개는 정말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어린이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계속 신경 써주고 돌봐줘야 하는 미취학 아동.


트람이나 전철, 기차에서 쉽게 반려견을 볼 수가 있는데 대부분 견주 옆에 얌전히 있다. 한두 번 타본 게 아니라는 듯이. 만약 우리 뿔뽀였으면 타는 사람마다 반가워하고 자신에게 인사해주길 원할 텐데. 


베를린에서도 목줄이나 입마개에 관한 찬반 의견이 많다고 한다. 모두가 개를 좋아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겐 공포심을 줄 수도 있다. 이 곳에도 마냥 목줄을 풀어서 산책하는 경우도 있고 흔히들 얘기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우리 개는 순해서 안 물어" 때문에 충돌도 생긴다고 한다. 공원이 많고 산책하는 개들이 많은데 배변봉투를 챙기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는 듯하다. 어느 사회나 눈쌀치푸리게 하는 매너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베를린의 반려견의 삶이 참으로 부럽다. 한국에 있는 나의 뿔뽀의 삶을 생각하다 보니 더욱이. 


오늘은 어디 갈까 by Piggy 



"건축사무실에서 일하는 신랑과 임신 33주 차 독일어 까막눈의 아내가 살아가는 베를린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인스타그램 @eun_graf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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