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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Dec 28. 2019

자기 주도 이유식

by 베를린 부부-Piggy


이렇게 안 먹을 줄 사실 몰랐다.

워낙에 분유를 벌컥벌컥 원샷하는 아기이기에 이유식도 잘 먹을 것이라고 기대한 내가 무색하게 찰리는 도통 입을 벌리지 않았다. 내가 만든 게 맛이 없나 싶어서 이것저것 브랜드별로 사서 줘봐도 마찬가지.

독일 아가들은 "힙[Hipp:아기 분유와 이유식 전문업체]"에서 기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격도 저렴하고 종류도 많아서 내심 나도 편하게 하려고 마음을 너무 놓고 있던 걸까.


몇 숟가락 억지로 주다 보면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내가 지쳐서 그만두기를 여러 번, 지인에게 "자기 주도 이유식"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다. 

이것저것 재료를 사서 다듬고 삶고 식판에 이쁘게도 담아서 준 첫날, 식판을 뒤집어서 던지는 바람에 식판은 부서지고 바닥은 난장판이 됐다. 

부글부글 속이 뒤집히는데 생각해보니 그래도 내가 먹여줬던 때보다는 아기가 화를 내지는 않았구나 싶어서 다음 날, 작은 실리콘 도마에 준비해서 줬다.

이건 먹는 건지 으깨서 버리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찰리는 나름 즐거워했고 나에게도 아기가 "이유식 놀이"를 하는 동안 옆에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다 먹고 나면 아기-의자-식판-바닥까지 기어 다니면서 닦아야 하지만 그래도! 아기와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나에게도 한결 위안이 되었다. 

물론, 아직도 손으로 다 으깨서 나 보란 듯이 바닥으로 던지고 울고불고하는 때가 많지만 어제보다 오늘은 한 조각이라도 더 먹었을 거라 믿으면서.


그래도 여전히 요거트는 마음의 준비가 안된다. 

찰리야, 미안하지만 욕조에서 먹자.


"건축사무실에서 일하는 신랑과 그림 그리는 아내와 아기가 살아가는 베를린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인스타그램 @eun_graf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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