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옥초당
4. 목욕 후 포근한 공기, 산사의 맑은 바람: 스자쿠
5. 여름 들판을 휘몰아 달려온: 바람의 모습
《향기의 모습(香りの象)》시리즈에서 세 번째로 소개드리는 향은, 바람의 모습(風の象) 입니다. 베트남 침향을 기조로 한 차분하고 달콤한 향기에, 천연 머스크, 용뇌, 인도산 백단을 더해, 청량하고 맑은 향조를 도모했다고 합니다.
창문을 열고, 향에 불을 붙여 봅니다. 오랜만의 진한 침향이 코에 닿는 듯 싶다가도 어느새 흩어져 없는 듯하다가, 바람에 실려오도록 옆에 가만히 내버려두면 저 먼 들판에서 찾아오는 소리처럼 들려오는 향기가 있습니다.
신선한 꽃 향, 꺾이지도 않고 살아 있는 그대로 들판과 숲에서 나부끼는 꽃과 풀의 향기가 달콤하고 신선한 향기 속에서 문득문득 고개를 내밉니다. 솔 향 같은 뉘앙스도 있어, 바람 부는 여름날 침엽수림 근처에 있으면 맡을 수 있을 법한 느낌이네요.
침향에 백단이 주라면 상당히 전통 향료 조합인데, 머스크와 용뇌가 생동감이 좋아 정적이지만은 않은 스타일을 자아냅니다. 갓 자른 나무 단면에서 나는 수지 향기 같은 생생함, 그리고 땅에 발이 붙을 듯 말 듯 공중에서 추는, 너울거리는 춤 같은 율동감.
여름 들판을 저 멀리서부터 바람이 휩쓸어 달려옵니다. 오는 길에 지나쳤던 숲도, 꽃도, 꺾이고 쓰러진 나무들도 모두 한데 담고, 이 들판에 오래 전부터 깃들어 있던 시간의 냄새도 함께 불어올려, 산뜻하고 화사하지만 고아하기도 한 오묘한 향을 전해 옵니다. 시원한 사과가 사각거리며 입 안에서 부서질 때의 질감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면서도 침향이 중심이 되었기에, 결코 중심이 없지는 않은. 흩어지는 바람이 아닌, 힘 있게 밀어올리고 방향을 가지며 흘러가는 바람입니다. 공기를 잡아올리고 당겼다 풀었다 놓는 솜씨가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베를 짜듯, 탄력 있는 균형감이 느껴집니다. 이만하면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조향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바람의 모습(風の象)을 가만히 맡고 있으면 나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데도 바람이 몰고 온 모든 이야기들을 들이마셔 온 몸으로 누리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싱싱한 나무와 사과, 향긋한 과일, 바람에 휘끗휘끗한 풀들과 선명한 붉은 색 꽃잎이 날리는 모습. 그런 광경을 갓 새긴 목판화였다가,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가, 눈을 끔벅이고 바라보면 다시 조각된 나무 속의 그림인 듯하다가.
감상에서 일관적으로 느꼈던 한 단어를 말하라면 생동감이라고 하겠습니다.
여름 들판을 휘몰아 달려온, 바람의 모습(風の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