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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Aug 29. 2021

목욕 후 포근한 공기, 산사의 맑은 바람: 스자쿠

오사카 옥초당

오사카 옥초당 네 번째 리뷰입니다. 가게 소개는 첫 글 을 참조해 주세요!


1.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동양 살롱: 매서원

2. 부드러운 매움, 개운한 슬픔: 구름의 모습

3. 백단 향이 피워내는 한 송이: 꽃의 모습

4. 목욕 후 포근한 공기, 산사의 맑은 바람: 스자쿠




스자쿠(朱雀).


한국식으로 읽으면 주작이네요. 사방신 중 남방의 신, 주작의 이름을 가진 향이라니 갑자기 무척 멋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과연 어떤 향을 품고 있을까요.


이번 향은 소개드리던 시리즈에 포함되지는 않고, 조금 더 편하게 피울 수 있는 생활 향입니다만, 제가 무척 좋아하는 배합이자 꼭 소개드리고 싶은 향이어서 글을 쓰게 되네요.


일단 패키지는 무척 멋있습니다. 붉은 남방의 신답게 노을 지는 산 풍경 위에 금박이 박혀 있습니다.

목욕 후 포근한 공기, 산사의 맑은 바람: 스자쿠


스자쿠(朱雀)는 인도 남부, 데칸 고원 카르나타카 주에서 나는 노산백단(老山白檀) 을 바탕으로 하는 향입니다. 백단, 자단 같은 천연 향료는 그 바탕이 향나무이고, 그렇다면 역시 같은 '백단' 이라도 산지에 따라 뉘앙스도 품질도 다르겠지요. 인도산 노산 백단은 백단 중에서도 특히 품질이 뛰어나 고급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스자쿠(朱雀)는 이 노산백단에 계피, 감송과 같은 천연 한방 향료를 배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주가 되는 향료에 어떤 향료를 부가하느냐에 따라 그 향의 방향성은 많이 달라집니다. 시원한 맛을 살릴 수도 있고 달콤함을 더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스자쿠(朱雀)의 조향은 차분하고 부드러우면서, 향을 다 태우고 나서 공간에 남는 잔향을 좋게 하려는 의도라고 합니다.



스자쿠(朱雀)의 향연은 은은하고 부드럽습니다. 기 양이 아주 많지 않지만 뭉글뭉글 우아하게 피어오릅니다.


다른 좋은 수식어가 많지만, 스자쿠(朱雀)는 향의 균형을 정말 잘 잡은 듯해요. 생활 향으로 피울 수 있을 만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부들부들 포근하고 기분좋은 향이 은은히 피어오릅니다. 아, 이것은 마치 갓 세탁한 옷을 다리미로 다릴 때 옷감과 분무기로 뿌린 물이 열로 만나 만드는 편안하고 고소한 향긋함입니다. 금방 씻고 나와서 욕실 문을 열어 두면 난방이 도는 집 안에 목욕 용품 향이 밴 촉촉한 욕실 공기가 살짝 흘러나와 섞일 때 감도는 아늑한 포근함. 주작의 화려한 날개가 아닌, 그 날개로 편안하게 감싸지는 요람 안에 안긴 느낌.


백단만으로는 이런 느낌이 나지 않아요. 백단은 조금 더 청량하고 기세가 좋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배합한 향료가 이 백단을 부드럽고 향긋하게 다스립니다. 전통 향의 뉘앙스로 묘하게 절에서 나는 향 느낌도 있는데, 어둡고 묵직한 절 향이 아닌 산사의 맑은 바람입니다. 녹음 우거진 바위산 위, 뚫린 마루 너머로 소리없이 넘나드는 바람.

 


위에서 욕실이나 다림질에 비유했지만, 소위 비누 냄새나 섬유유연제 냄새와는 다릅니다. 무엇보다 백단입니다. 달고 포근하기만 하지 않으며 품위 있고 맑습니다. 너무 뜨는 느낌이 들지도 않고 맛도 안정적이라, 집안에서 차분한 분위기 속에 일상의 일들을 하고 싶을 때, 명상이나 집중이 필요할 때도 좋겠습니다.


이 향이 주작이라면 날개를 접고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세상에 따스한 온기를 퍼져나가게 하는 모습이겠지요. 주작이라는 테마로 이런 조향을 해낸 옥초당의 해석도 돋보입니다.

 


* 매거진의 모든 리뷰는 주관적 감상이며, 가게 연혁 등을 직접 인용하지 않는 이상 제가 즐기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옮깁니다. 따라서 현재 시점과 다르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류가 있을 시 알려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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