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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Jul 17. 2024

'초연'하다는 건.

감사편지 스물일곱 번째.  당연한 건 없습니다

40대 초. 다시 학교에 갔습니다.

[아동복지학].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주어진 기회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잡았습니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을 야간대학에 다녔습니다.


20명의 학생들은 직장동료 같은 어린이집원장님이 다수였고 소수의 일반인이 있었습니다유아교육을 전공하거나 사회복지 전공자였습니다.


성격 탓인지 어쩌다 보니 또 과대표입니다.

둘째가 재미로 본 저의 사주에는 어느 공동체에 있던지 눈에 띄는 팔자라고 하더니

(저는 전혀 믿지 않지만 우째던 그렇습니다)


그리 가만히 있는데도 돌고 돌아 대표라는 타이틀이 제 손에 주어졌습니다.

이때 [아동복지학과장]님이 백경* 교수님이셨습니다.


학과 전임교수님이 세분 계셨는데 친하신 듯 아닌 듯 참 묘한 분위기의 관계 속 과대의

역할은 매우 애매모호한 눈치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드디어 졸업시즌이 오고 이놈의 오지랖이  발동합니다.

오지랖 무슨 태평양인지.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동기생들을 설득하여 원서를 쓰게 만듭니다.


뒷말들이 무성합니다.

대표이니 합격은 당연할 거라 여기니 원서를 접수하도록 설득한다는 둥  뭔 요상 망측한 추측들이 난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명 대학원생모집에 같은 동기 7명이 원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게 됩니다.

거의 5대의 1의 경쟁률이었습니다.


합격발표가 있는 날.

모두가 저의 합격을 당연하다 믿었지만 6명의 합격통보와는 달리 후보 1순위로 저만 낙방이었습니다.


저의 충격보다 저의 합격을 호언장담하던 많은 분들과 특히 교수님들조차 어이없는 결과에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맘인지 저는 학과장님께 장문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 최선을 다하겠다.  저는 아니지만 다른 분 모두를 합격시켜 주심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장문의 답글이 학과장 교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화를 내며 항의를 하러 올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어떻게 이런 결과를 낼 수 있냐고 대신 화를 내 주신 교수님도 계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초연'하게 대처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처리되었다는 교수님의 연락을 받게 됩니다.


없는 자리를 다른 과의 결원자리를 빌려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지도교수님이 되셨습니다.


나중 시간이 지나 졸업논문을 발표할 때 칭찬을 받게 되고 저의 논문에는 세분의 도장을 나란히 받게 되었습니다. (10분 중 5명만 분의 도장을 받았음)


졸업을 앞둔 즈음  교수님 한분께서 본인이 저를 불합격시키셨다고 말씀하셨죠.


지나치게 당당한 저의 모습도, 한편으론 학과장님께로 치우친 저의 모습이 불편하셨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곤 그러셨죠.


본인도 맘이 편치 않았지만 이렇게 좋은 결과로 마무리하게  되어 본인도 기뻐하신다고.


지금도 가끔씩 생각해 봅니다.


그때 항의를 위한 전화벨을 울렸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 거 같습니다.




백경*  교수님.

잘 지내시나요?


어떤 모습으로 노년을 보내고 계실지 가끔씩 상상을 해 봅니다.


교수님께서  저를 볼 때마다 그러셨지요.

'꼭 혼자서 사무실로 한번 찾아오라고'


그런데 제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의아해요.

한번 눈 딱 감고 혼자서 찾아뵈었더라면 지금 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의리인지 무 그리 중히 여겼던지. 저의 옆엔 늘 다른 원장님과 함께였죠.


아님 이것도 '초연함'에 속한 거였을까요?


교수님!

못 뵌 지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제 보고 싶고, 그립고 궁금합니다.

여전히 유쾌하게 지내고 계시겠지요?


하필 다 사라진 연락처가 야속해집니다.

교수님 연락처 수소문해서 꼭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제 홀로 교수님 찾아뵙겠습니다.

아니 지금은 그때 제자들 다 보고 싶어 하시겠지요?


저의 대학원 진학은 저의 삶에 많은 변화를 부여했습니다. 진심으로 저를 돌아보아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조만간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옛날추억들 다시 나누어볼 날을 기대합니다.


2024년 7월 15일 치앙마이에서 제자 김**드림.



 ■참고


초연하다. (형용사)


1.
어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다.


예) 돈 문제에 초연한 사람.
      시속에 초연한 태도.

      어느 누가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을까?


2.

보통 수준보다 훨씬 뛰어나다.


# 초연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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