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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펫크리에이터 모리 Oct 10. 2024

You made my day!

두 번째 걸음

영어에 [OO made my day.]라는 표현이 있다. 어떤 사건이나 누군가가 나의 하루를 멋지게 만들어주었다는 뜻이다. 


1년 365일 카메라를 들고 뉴욕의 거리를 나설 때면 으레 하루 한번 이상은 꼭 셔터를 누를 일이 있었지만, 유난히 특별한 반려인과 반려동물을 만나는 날엔 한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필름한통을 다 써버리는 날도 종종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날이면 그들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나는 하루종일 들떠 있었다. 필름을 현상하고 현상한 필름을 스캔해 컴퓨터로 확인하기까지의 그 설렘은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미처 알지 못한다. 마치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 길을 걷다 작은 꽃몽우리를 발견했을 때, 아- 봄이구나 하며 밀려오는 그 야들야들하면서도 몽환적인 기분. 필름사진에는 디지털사진이 갖고 있지 않은 기다림이란 미학이 존재한다. 내가 필름 사진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이날도 공원에 앉아 지나가는 반려견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별 수확 없이 자리를 뜨려는데 그가 나타났다.

나는 이곳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 그를 두어 번 정도 마주쳤었다. 남자는 주말이면 가끔 이곳에 나타났었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어 그를 반겼다. 그는 행위예술가였다. 


호기심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자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반려인이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작은 강아지는 미동 하나 없이 벽에 붙어선 남자를 신기한  올려다보았다. 남자가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저 강아지, 진짜 사람인 줄 알고 있을까?'


그러나 곧 이내 멍청한 물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는 인간보다 후각이 최소 40배에서 100만 배까지 발달해 있기 때문에 모르고 싶어도 불가능할 것이다. 100만 배라니. 사람과 사물의 냄새뿐만 아니라 어쩌면 개들은 행복의 냄새, 슬픔의 냄새, 두려움의 냄새 등 무형의 냄새까지 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개들이 암세포의 냄새로 암환자를 구별하고 코로나 양성환자도 찾아낼 있다는 안다면 아주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다. 개들의 후각에 관한 능력은 아직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뒤에서 그들을 향해 셔터를 누르면서는 가슴이 두근두근 떨려오기 시작했다. 필름사진을 오래 찍다 보면 지금 필름에 찍힌 상이 잘 찍혔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된다. 반려인이 입고 있던 또 다른 예술품 같은 셔츠와 내내 행위예술가를 조용히 바라보던 강아지, 미동조차 없이 예술품처럼 눈을 감고 벽에 붙어있던 남성, 인간의 눈에 가장 보기 편안한 구도인 완벽한 삼각 구도까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사진은 대박이다!


현상과 스캔 마침내 확인한 사진을 보고는 다시 워싱턴 스퀘어로 달려가 벽에 붙어있던 남성을 끌어안고 You made my day!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운이 좋은 날이었다.



또야..?


사실 OO made my day란 표현은 멋진 순간에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표현을 처음 배우게 된 것도 친구가 웃긴 고양이 사진에 나를 태그 하면서 [This made my day.]라는 글을 남기면서였다. 보통은 웃긴 사건을 마주할 때도 이 사건이 내 하루를 신나게 만들어 주었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샐러드바에서 친구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마트로 향했다. 뉴욕 마트 내에는 샐러드바가 있는 곳이 많은데, 나의 식사는 주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날도 창문에 붙은 테이블에 앉아 친구와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멀쩡이 잘 걸어가던 개가 난데없이 길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 장면을 목격한 나와 친구는 낄낄대며 웃어대기 시작했고 지나가던 행인들도 한 마디씩 우스갯소리를 하며 지나갔지만 반려인 둘은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무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또 다른 웃음포인트가 되었다. 


"쟤 진짜 웃긴다. 하하"

"아빠, 안아주세요~다리 아파요~!"

"보호자들은 지겨운 표정인데? 하하하"


생각보다 그들은 한참을 그러고 서있었다. 우리가 밥을 다 먹을 때 까지도 강아지는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귀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사실 반려견 산책이 의무처럼 자리 잡은 뉴욕에서 이와 같은 장면을 보기란 아주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워낙에 산책하는 반려견들이 많다 보니, 그리고 첫 장에서 친구 Rev의 처럼 하루 여러 차례 산책하는 반려견들도 있다 보니 걷다가 벌러덩 누워 걷는 것을 거부하는 반려견들을 마주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물론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벌러덩 드러누운 그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Guys, you made my day! 얘들아, 너네가 내 하루를 신나게 만들어줬다!]



날 안고 가라 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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