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걸음
뉴욕엔 유독 대형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비교군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내가 살고 있는 서울 뿐이긴 하지만, 서울과 비교해 봤을 때 뉴욕에서 대형견을 키우는 사람은 내가 느끼기에 약 1.5배~2배 정도 많은 것 같다.
살면서 제일 큰 개를 만난 것도 뉴욕에서였다. 뉴욕에 도착한 지 몇 주 지나지 않았을 무렵, 공원에서 엄청나게 큰 개를 만났다.
[와! 혹시 사진 한 장만 찍어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마음껏 찍으세요.]
개의 보호자인 남성이 신고 있던 친근한 삼선슬리퍼와 그의 옆에서 사람구경을 하던 대형견의 모습이 퍽이나 재밌다고 느껴졌다. 엄청난 크기의 압도적인 느낌과 세상 가벼운 것의 조화라니.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개가 신기했던 게 나뿐만은 아니었던 건지 곧 주변에 앉아있던 다른 사람들도 개에게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큰 개를 키우려면 보호자가 신경 써야 할 게 얼마나 많을까?'
당시 나도 한국에서 대형견 세 마리를 키우고 있었기에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보호자보다 훨씬 큰 개를 보고 있자니 과히 경이로움마저 느껴졌다. 보통의 반려견들은 사람 아이의 2세~3세 정도의 정신연령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 저 개는 그러니까 덩치가 산 만한 2-3세 정도의 거대한 아이와 같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엄청난 훈련과 보다 잘 키워야 하는 수고가 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이번엔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대형견을 산책시키던 남성을 만났다. 날이 너무 더워 개가 헥헥대자 남성은 물병을 열어 개의 목에 물을 부어주고 있었다. 대형견 반려인으로써 대형견이 작정하고 달리면 얼마나 힘이 센지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산책을 할 수 있는 건지 다소 의문이 들었다. 사진 속 대형견은 남성보다 천천히 걷는 바람에 오히려 롤러브레이드를 탄다기보다 바닥을 찍으며 걷는 속도로 산책 중이었지만.
더욱 신기했던 것은, 지나가는 행인들 중 어느 누구도 그에게 눈총을 보내거나 질타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롤러브레이드를 탄 채 대형견을 산책시켰다면... 분명 누군가는 따가운 눈총을 보내거나 실제로 한소리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견을 키워본 이들이라면 익히 아는 그 눈빛 말이다. (그러나 솔직히 롤러브레이드를 타면서 대형견을 산책시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어쨌거나 소형견이 압도적으로 많은 우리나라에서 대형견은 (필터 없이 툭 까놓고 말하자면) 아주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다. 대형견을 키우는 보호자들이 산책을 하면서 한 번쯤은 받지 않아도 될 비난을 받는 억울한 일을 겪게 되는 건 그래서이다. 물론 걔 중에는 반려인이 대형견을 잘 통솔하지 못해 질타를 받아 마땅한 경우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대형견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눈총을 받는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유학시절 훨씬 이전부터 우리 가족이 키우던 세 마리의 대형견은 내가 유학을 하고 있는 동안 매해 한 마리씩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우연한 계기로 경산에서 마당개로 살던 한 대형견을 세 달간 임시보호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미 우리 집 대형견을 기르던 때보다 수년이 흐른 뒤였지만, 여전히 대형견을 향한 대중의 눈길이 마냥 좋지 않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저녁 산책을 나섰던 어느 날엔가는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에게 이런 말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
"아니, 저런 큰 개는 산책을 할게 아니라 묶어놓고 키워야지 산책을 시키긴 왜 시켜."
장유유서도 사람에 따라 달리 할 수 있다 믿는 젊은이인 나는, 할머니의 말을 듣자마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냐며 따져 물었지만 막 시골에서 올라오셨다는 할머니에게 개를 마당에 묶어 키워야 한다는 개념은 지나가던 열받은 한 반려인의 말 한마디로 바뀔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짧은 줄에 묶여사는 대형견들(흔히 마당개라 부른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한 지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그들에게 있어 대형견들의 산책할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요, 알아도 따르지 않아도 되는 터무니없는 낭설에 불과한 듯싶었다.
2024년 현재.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동물권 협회의 콘텐츠 제작일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일을 하며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산책 없이 묶여사는 마당개에 대한 사건이다. 옛날부터 그래 왔으니까- 집을 지키라는 용도에 불과하니까- 라는 이유로 여전히 묶여사는 전국의 마당개들과 뉴욕 한복판을 매일같이 오가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대형견들은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아간다. 내가 그들의 반려문화를 사진에 담고 전하는 이유는 이 같은 두 종류의 삶에 대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가진 마당개 문화를 당연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모두가 같은 반려견이고 대형견이며, 단순히 태어나고 자란 곳이 다를 뿐 그들은 잘못이 없다.
대형견들이 억울하지 않은 도시, 뉴욕.
나는 우리가 딛고 서있는 이곳이 그런 도시가, 나라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