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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펫크리에이터 모리 Oct 09. 2024

산책하는 도시, 뉴욕

첫 번째 걸음



[Rev,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그럼!]

[뉴욕엔 산책하는 개들이 왜 이렇게 많아?]

[그런가? 매일 산책을 꼭 시켜줘야 하니까, 그래서 많아 보이는 건가?]

[매일 산책을 해?]

[그럼! 우리 개는 하루에 세 번 산책하는데?]

[세 번이나? 왜?]

[안 그럼 집에서 계속 배변을 참아야 하잖아. 그리고 산책을 자주 해줘야 건강도 지켜줄 수 있다구!]


Rev는 대체 그런 질문이 어디 있냐며, 당연히 나가서 용변을 보고 산책도 해야 건강하게 키울 수 있지 않겠냐고 다소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 순간 내내 존재해 있었지만 나만 몰랐던 세상에 막 눈을 뜨기 시작한 사람처럼 속으로 경악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Right… (맞아…)이라 말하며 그녀가 알아채기 전에 서둘러 지렁이 젤리처럼 늘어지는 말끝을 붙잡아야 했다.


뉴욕에서 반려동물과 산책을 한다는 것은 마치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세상을 창궐하는 순간에도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는(해야만) 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게 매일 이루어지는 그들만의 루틴이었다. 그곳에서 규칙적 산책 없이 집에서만 개를 기른다는 것은 마치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아침과 저녁, 그리고 계절이란 개념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은 비논리적인 일처럼 여겨지는 듯 보였다. 법으로 1일 1 산책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반려인들끼리 그렇게 하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도그워커를 고용해 가면서까지 루틴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용기 내어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었다. "그럼요! 멋지게 찍어주세요."


반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1일 1 산책을 이야기하면 '굳이?'라는 반응이 일반적이었기에 당시 나에게 그들의 산책문화는 신기함을 넘어서는 문화충격에 가까웠던 것 같다. 오늘날에야 우리나라도 산책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반려인들이 많아져 이젠 익숙한 문화가 되었지만 2016년 당시의 내겐 그랬다. 사진 공부를 하러 뉴욕으로 떠났던 사진학도로써,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정원에서 동물들과 함께 자란 사람으로서 이후 그곳에서 반려동물 사진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건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을까.


처음 용기 내어 떠듬떠듬 영어로 사진촬영을 부탁했던 그날. 화장실에 간 아내를 기다리는 중이라던 남자는 내게 마음껏 찍어달라며 포즈를 잡아 보였다. 이러저러한 스몰토크를 나누던 그와의 만남을 통해 나는 벌써 내가 이곳 뉴욕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 직업, 성별 등에 관계없이 낯선 이들과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문화, 사진촬영을 부탁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이 언제나 Yes였던 오픈 마인드의 도시. 


나는 속절없이 빠르게 뉴욕이란 도시와 속을 걸어 다니는 반려인들, 그리고 그들의 반려동물들 사랑에 빠졌다.


"예쁘게 찍어주세요."


촬영의 과정을 들려주자면 대략 이러했다. 내가 촬영을 부탁하면 그들은 어떤 이유로 촬영을 하는 건지 물어왔고, 예술학교를 다니며 반려동물 사진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면 어느 학교를 다니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맨해튼 중심에 있었기에 현지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곳이었고, 그래서 이야기는 한참을 또 이어지곤 했다. 그리고 사진기가 참 멋있다는 말과 영어는 어디서 배웠냐는 시시콜콜한 대화까지 끝나고 나면 마지막은 이런 대화로 끝나곤 했다.


[혹시 제 메일로 오늘 찍은 사진을 보내줄 수 있어요?]

[그럼요! 근데 필름 사진이라 조금 시간이 걸릴 거예요.]

[오, 더 멋진걸요! 꼭 보내주세요. 정말 고마워요.]


사진을 받은 이들은 고마워했지만 정작 더 큰 선물을 받은 건 언제나 내쪽이었다. 단순히 그들의 산책문화가 신기해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어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였지만 내게는 이것이 위로의 과정이 되었다. 타지생활을 하며 한 번쯤은 필히 겪어야 했던 향수병과 인종차별, 여타 고되고 힘든 일들은 그들이 보내는 미소에 희석되었고 나는 무사히 그곳에서의 유학생활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지금도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때 그 거리에서 함께 나누던 대화들, 그날의 날씨, 온도, 기분까지 모든 것들이 다시 두 눈과 마음 속에 밀려든다. 사진 속 그들의 미소에는 여전히 따뜻한 말들이 어려있다. 


"뉴욕에 온 걸 환영해요, 복잡하고 멋진 도시죠. 행운을 빕니다."


그들이 보내준 응원과 따뜻한 말들, 멋진 반려문화를 책으로 전하는 일이야말로 내가 그들에게 늦게나마 보답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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