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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펫크리에이터 모리 Oct 14. 2024

상실의 슬픔은 반려동물로 잊혀지고

네 번째 걸음

[혹시 너도 이 수업 때문에 여기 있는 거니?]

[응, 바꾸려고. 너도?]

[응! 우리 같은 수업을 듣게 되겠다. 반가워 난 클로이야.]


클로이와의 첫 만남은 학교 복도 상담실 앞 소파에서였다. 중국인인 그녀는 외향적이고 활발한 성격에 호기심 넘치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못해 어린 시절부터 해외에 나와 혼자 타지생활을 해왔다고 했다. 뉴욕생활 내내 우리는 자주 붙어 지냈고, 낯선 땅에서 나와 비슷한 생김새를 한 친한 동양인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리, 나 중국에 잠시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곧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갑자기 고향에 다녀와야 한다니.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나는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자세한 얘긴 다녀와서 해 줄게.]


몇 주가 흐른 뒤 다시 돌아온 클로이는 왜인지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알 수 없는 슬픈 기운이 클로이를 감싸 돌았고, 나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클로이는 어느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윗집에 살던 나의 은행 매니저가 맛있는 요리를 가져왔다며 생선튀김을 건네주고 간 날, 나는 집으로 그녀를 초대했다. 우리는 곱게 차려진 저녁을 앞에 두고 잠시 그렇게 앉아있었다. 젓가락이 생선으로 향하기 전 클로이의 입에서 마침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엄마가 돌아가셨어. 암 투병 중이셨는데, 설마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갑작스러운 클로이의 말은 마치 하늘에서 쿵- 하고 떨어진 백 톤 무게의 돌덩이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돌아 가시자 마자 아빠는 여자친구가 생겼다면서 엄마가 남긴 재산을 모두 자기가 관리하겠다고 하더라. 난 이제 어떻게 살지? 이제 나한테 남은 가족은 아무도 없어. 난 완벽한 혼자야….]


그날 저녁 클로이는 눈물로 밤을 보냈고 나는 어쭙잖은 위로로나마 그녀의 곁을 지켜주었다.



다행히 이후 클로이는 그래도 오랜 기간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 타지생활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던 건지 빠른 시간 안에 슬픔을 이겨내고 곧 다시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약간 ‘똘끼’ 충만했던 과거의 클로이가 다시 돌아온 날, 나는 속으로 홀로 축배의 잔을 들었다. 더 이상 그녀가 우울해하지 않았기에 기뻤고, 크나큰 슬픔을 이겨내고 마침내 다시 나아가기로 마음먹은 한 소녀의 용기를 보았기에 대견함도 느꼈다.


다소 대장부 같은 성격의 엄마와 자주 부딪쳤던 클로이는 평소 절대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졸업을 하고도 쭉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내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며칠은 엄마와의 사이가 좋았던지, 돌아가시기 직전 짧은 시간 동안 클로이는 난생처음 엄마의 사진을 잔뜩 남겼다고 했다. 내내 어긋나 있던 모녀의 관계는 다행히 그녀의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클로이의 후회를 적게 만들어주거나 엄마를 잃은 슬픔을 축소시켜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가까운 누군가를 잃었다는 슬픔은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회복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클로이의 상태는 결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어떤 미지의 영역에서 갑자기 나아가기를 멈춰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다소 뜬금없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해 왔어.]


클로이의 반려견 마라.


클로이의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미리 말하자면, 솔직히 나는 유학생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걸 완전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유학생들은 방학 때면 반려견을 두고 여행을 가거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만약 운이 나빠 반려동물을 맡아줄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친구의 친구, 혹은 친구의 사촌의 사촌이라던가 더 넘어가서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모르는 사람에게 반려동물을 맡긴 채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일도 발생한다. 흔히 사고는 이런 때에 발생하곤 한다. 


게다가 졸업을 하고는 어떤가? 계속해서 이곳에 있을 수도 있지만, 다시 다른 도시나 나라로 떠난다 거나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나마 고국으로 돌아간다면 반려동물과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또 다른 나라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면 반려동물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낫다. 타지생활은 제 몸뚱이 하나 간수하며 살기도 벅찰 만큼 쉽지 않다. 그러니 외부인이 타지에서 살면서 내가 아닌 다른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건 내가 봤을 때 욕심이고 본인에 대한 과대평가이다. 


[너 이제 어쩔 셈이야?] 


클로이에게 당장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클로이였다. 바로 몇 개월 전 엄마를 잃은 친구가 아니었던가. 마음에 병을 조금이라도 이해받기 위해 매주 학교 소속의 심리상담사를 만나고 있던 친구였다. 웃고 떠들며 놀다가도 얼굴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갑자기 우울한 모습을 보이곤 했던 친구였다. 나는 클로이에게 묻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정말? 너네 집에 놀러 갈래!]


마라와 클로이.


클로이가 마라를 입양한 후로 나는 예전만큼 그녀와 자주 만나 놀지 못했다. 그녀가 마라에게 푹 빠져 더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마주친 클로이는 이제 완전히 다 나았다- 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으며, 또 더 이상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살아갈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 대신 마라를 위해 열심히 살 거라고, 졸업하면 동물들을 위한 일을 하며 살 거라고 확신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


[클로이, 오늘 애들이랑 파티 갈 건데 너도 갈 거지?]

[아.. 나는 이따가 마라를 산책시키러 가야 해.] 


클로이는 마라와 매일 산책하는 일에 진심이었고, 옆에서 이를 지켜본 나는 더 이상 유학생에게 입양된 마라나 최근 엄마를 잃은 클로이의 상황에 대해 안타깝다 느끼지 않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입양을 원치 않아 보호소에서 늙어가던 마라에게 클로이는 너무나도 훌륭한 반려인이 되어주었다. 둘은 서로에게 좋은 가족이었다. 그래서 나는 클로이가 친구들을 조금 멀리해도 괜찮다고 느꼈다. 그녀가 진정으로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산책하는 마라와 클로이.


그렇게 매일같이 마라와 산책하며 상실의 슬픔을 이겨낸 클로이는 정말로 중국으로 돌아가 반려동물을 위한 일을 하며 살고 있고, 나 또한 한국에서 동물권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가끔 연락하며, 서로의 반려동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코 치유될 수 없을 것 만 같았던 아픔을 마라와 함께 하며 이겨낸 클로이를 멀리서나마 깊게 응원한다. 나의 뉴욕 삶에서 큰 파이를 차지했던 그녀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마라도 오랫동안 그녀의 곁에 함께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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