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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펫크리에이터 모리 Oct 08. 2024

프롤로그

이야기의 시작

<이야기의 시작>


불길이 타올랐다. 이미 마지막 숨을 거둔 닭들은 힘없이 온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엉망이 되어버린 깃털이 박힌 제 몸뚱어리를 불길에 맡기고 있었다. 무려 100마리였다. 100마리나 되는 닭들이 하룻밤 새에 모두 목숨을 잃었다.


사건은 바로 어제 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일어났다.


경기도 뒷산 어딘 가에서 인간들의 눈을 피해 살아가던 들개들이 있었고, 그날 새벽 그들은 우리 집 정원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가족이 약 1년간 길러온 닭들을 모두 공격하고 달아났다. 10년 이상 정원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난생 처음 겪는 사건이었다.


죽은 닭들을 모두 불 태운 뒤 땅에 묻고나서 우리는 다시는 닭을 기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우연히 우리집 정원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닭들이 내어주던 감사한 달걀들도 더 이상 우리집 식탁에 오르지 못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들개들은 그렇게 순식간에 우리집 정원의 평화를 앗아갔다. 어떠한 동물들도 더 이상 정원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며칠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또 일어났기 때문이다.


[엄마, 토끼들 다 어디 갔어?]

[밤새 또 들개들이 다녀간 모양이야..]


텅 빈 토끼집들을 보며 엄마는 다소 곡을 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네마리의 토끼들이 지난 밤 들개들에 의해 또 처참히 목숨을 잃었고, 엄마는 망연자실하셨다. 며칠 새에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두번이나 일어나자 아빠는 그 길로 경찰서에서 긴 장총 한자루를 가져오셨다.


[들개들이 정원에 또 나타나면 공중에 총을 쏘아 놀래 켜서 내쫓을 거다.]


나는 내가 보고 겪고 있는 사건이 과연 진실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두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총이라니. 여긴 한국이 아닌가. 물론 실탄이 장착 되어있지 않은 소리만 요란한 총이었지만 그래도 그 검고 긴 낯선 것이 집안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한 번쯤은 의심해 보아야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살육을 저지르고 도망간 들개들이 무서운 건지, 아니면 생에 처음 마주한 총이 더 무서운 것인지에 대한 혼란 또한 당연하게 느껴야만 했다. 당시 나는 고작 17살이었다.


마치 4시간가량 이어지는 다소 지루한 모노톤의 독립영화와도 같았던 우리집의 일상은 그렇게 갑자기 액션이 난무하는 헐리우드 영화로 바뀌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 그 이후 들개들은 마치 인간들이 이번엔 만만의 대비를 했다는 걸 알아차리기라도 했다는 듯, 더 이상 우리집 정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만약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더라면 아마 나는 9년 후 뉴욕에서 반려동물 프로젝트를 시작 하지도, 한국으로 돌아와 이렇게 책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들개사건은 그저 살면서 우리집에 한 번쯤 총이란 게 있었던 잠깐의 신기한 기억쯤으로 남아있었을 수도 있었고, 나는 지금 동물과는 영 상관이 없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약 한달 후, 그들은 우리집 정원을 다시 찾았다.


햇살이 완연한 화창한 아침. 주말이라 다소 늦게 일어나 눈을 비비며 잘 차려진 아침 밥상 앞에 앉았다. 벌써 수년 전 어느 특별할 것 없던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날을 아주 또렷이 기억한다. 반쯤 뜬 뿌연 눈 앞에는 흰쌀밥과 여러가지 반찬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앞에 놓인 티비 왼쪽에 위치한 큰 창문은 환하게 열려 있었다. 아빠는 화장실에 계셨고, 수저를 내게 건네 주던 엄마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이른 새벽에 또 들개들이 나타났다더라.]


웬 아침인사가 이러나 싶어 양 미간 사이에 내천자를 그리며 엄마를 바라보았다. 누가 아침 댓바람부터, [어제 새벽에 살인자가 또 나타났어.] 라고 하는 건 아침부터 듣기에 썩 기분 좋은 인사는 아니지 않은가. 오랜만에 들은 들개라는 단어에 나는 조금 놀랐던 것 같다.


[정말? 그래서?]

[쫓아내지 못했데.]


왜? 이해할 수 없었다. 총까지 준비해 놓지 않았던가. 게다가 지금껏 목숨을 잃은 닭들과 토끼들을 생각하면.. 잘못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 초등학교 도덕시간에 배운 아주 기본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살육이란 크나큰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또 나타났다니! 게다가 쫓아내지도 못했다고?


[엄마 개랑 새끼 개가 같이 걸어가고 있었데. 아빠가 차마 공중에 대고 총을 쏠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


엄마의 말은 의외이면서도, 또 그렇지 않았다. 그래, 새끼 개가 함께 있었구나. 나 같아도 도저히 쏘지 못했겠다. 더는 묻지 않고 눈 앞의 흰 쌀밥으로 눈길을 돌려 식사를 시작했다. 아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더 들을 이야기도, 되묻고 싶은 말도 없었다. 나는 그저 나의 부모님을 이해했던 것 같다.


다행히 들개들은 아빠가 집안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걸 알았는지 그대로 유유히 정원을 지나 다시 사라졌다고 했다. 애초에 공중에 총을 쏘아 소리로 그들을 쫓아내겠다고 했던 아빠의 말이 지금에 와서는 마치 농담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쨌거나 새끼가 같이 있지 않았어도 아빠는 총을 쏘지 못했을 거란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정원을 드나드는 길냥이가 다른 힘 센 길냥이에게 밥을 빼앗길 까봐 밥시간만 되면 보초를 서는 사람이 총을 쏘아 동물을 겁 주겠다니, 아빠는 내가 들개들에게 당하고 있지 않는 이상 절대 총을 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아빠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하마터면 정말 헐리우드 영화가 될 수도 있었던 (정말 그랬을까?) 그날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잔잔한 인디영화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들개들은 다시 우리집 정원에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아빠는 쓸모 없어진 총을 다시 경찰서에 반납하셨다.


큰 임팩트는 없는 스토리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 영화의 결말이 꽤나 마음에 든다. 다른 어떤 대작보다 계속해서 마음에 남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들 하지 않는가.


어린 시절 정원에서 일어났던 들개 사건을 포함한 여러 동식물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나라는 예술가를 있게 한 아주 중요한 삶의 조각들이 되었다. 언제나 정원을 지나가고 또 잠시 머물다 가는 동물들을 외면하지 않고 돌보거나 도와주었던 부모님을 보며 나는 생명의귀중함이란 아주 중요한 가치를 배웠다. 그리고 이는 내가 뉴욕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동안 세상을 향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에 대한 중요한 힌트도 되어주었다.

 

그렇게 들개 사건이 있고 9년 후, 나는 뉴욕 거리에서 반려동물 사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엇갈리는 거리 위 수많은 발걸음 속에서 우연히 만나 이제는 사진 속에서 영원이 된 순간들. 책에 담긴 모든 순간들이 누군가의 마음에서 또 다른 영원으로 남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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