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걸음
[We always outlive our dogs.]
인간은 항상 반려견보다 오래 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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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외 작가의 인터뷰에서 듣고 내 마음속에 한동안 남아있던 말이다. Outlive (-보다 더 오래 살다)라는 영어단어를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어에는 없는 단어이지 않나.
사실 내가 반려동물 촬영을 하기 시작한 건 뉴욕에서가 아닌 한국에서였다. 대학시절 우리 가족의 첫 반려견 '아롱이'가 떠난 후 핸드폰에 아롱이를 추억하기 위한 사진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후 눈물로 그 중요성을 사무치게 깨닫곤 반려동물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너넨 나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마.] 라며 친구들의 반려동물 사진을 고화질로 카메라에 담아주는 일을 자처해하면서 사진들이 누군가에게는 후에 아주 감사하고 다행인 존재가 될 거란 걸 알았기에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임했었다.
그리고 이후 운 좋게 빅이슈라는 매거진에서 사진을 짤막한 글과 함께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이 일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국, 일본, 대만 등을 여행하며 반려동물을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었고 몇 년 후 뉴욕에 도착했을 땐 그곳이 나의 새로운 무대가 되었다. 그간 봐왔던 어느 나라, 도시 보다도 뉴욕이 가장 반려동물 친화적인 문화를 갖고 있었기에 어쩌면 그곳에 도달한 건 우연이었지만 또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국에서 첫 반려동물 사진을 찍은 지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제일 먼저 카메라에 담았던 지인 언니의 고양이는 최근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대부분의 지인들의 반려동물은 그 생사를 알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긴 시간 유학을 하며 대부분 연락이 끊겼거나 대면대면한 사이가 되어 갑자기 반려동물의 근황을 묻기 다소 민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진은 남는다. 사이가 멀어져도, 반려동물이 떠났어도, 남는 것은 사진. 그래서 사진이 중요하다.
이후 뉴욕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제 막 1살이 채 안된 반려동물을 만날 때도, 4-5살쯤 된 아직은 천방지축인 반려동물을 만날 때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 건 행동이 다소 느리고 얌전한 10살 이상의 노령 친구들이었다.
보통의 노령 반려동물들은 눈이 잘 보이지 않거나 소리에 더 이상 민감하지 않고 걸음이 아주 느리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에는 무척 편하다. 하지만 뭐든 귀찮해 할 나이이기도 하기에 빠르게 몇 컷 찍고는 대부분의 시간은 보호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이유는 그들이 그 긴 시간 반려동물을 훌륭하게 키워낸 멋진 보호자라는 것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기도 했고 또 반려인으로써 어떻게 하면 최대한 건강히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지 배울 점도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첫 반려견 '아롱이'는 11살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다행히 정원 딸린 집에서 평생 뛰어놀며 살다 갔기에 조금 일찍 떠난대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조금 더 잘 케어를 해줬더라면 오래 살았을까 하는 생각은 쉬이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롱이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나는 대학생활을 하며 서울에서 자취를 했기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한 채 떠난대에 대한 아쉬움도 많이 남아있다. 어느 날 집에 방문해 보니 있어야 할 존재가 없다는 걸 깨닫고 대성통곡했던 그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목을 놓아 꺼이꺼이 울어대며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별이란 원래도 그런 거지만, 마지막을 함께해주지 못했단 미안함은 내 안의 장기와 같아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까지도 나와 함께일 것이란 걸.
충분한 사진으로 그리워하지 못하는 대신 아롱이는 내 안에 그렇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아롱이가 떠난 후 키운 세 마리의 강아지들도 이후 유학을 떠나 있으면서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역시 나는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해주지 못했고 그들 모두는 내 안에 여전히 미안함이란 장기로 아롱이 옆에 자리 잡았다.
앞선 편에서 말했지만 내가 유학생이 반려견을 키우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도 이런 데에 있다. 가족 전체가 함께 강아지를 키워도 이렇게 함께 마지막을 해주지 못하는 나 같은 구성원이 발생하는데 혼자서, 게다가 타지에서 홀로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길어야 20년 될까 말까 한 반려동물보다 언제나 Outlive 하는 인간의 숙명이 그리 개탄스럽지 않은 인간들만이, 그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만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한 생명의 평생을 책임지겠다는 건 그런 가벼운 마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뉴욕에서도 촬영을 한지 어느덧 수년이 흘렀다. 지금 이 친구들이 모두 여전히 뉴욕 거리를 걷고 있을지, 힘차게 걷고 있을지 느릿하게 걷고 잇을지, 혹은 사진 속에 함께 담긴 보호자들도 여전히 건강한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사진은 남아있다.
사진은 지금 이 순간을 담지만 필름에 상이 담기는 그 순간부터 우리가 보는 것은 현재가 아닌 과거이다.
언젠가 이 프로젝트가 계속되어 많은 사람들이 사진들을 보게 될 기회가 있다면, 그중 누군가는 사진 속 네발 친구들을 보며 뜻밖의 선물을 받은 듯 기쁨의 눈물을 흘리거나 혹은 그 안의 사람들을 보며 잠시나마 추억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될 수 있을까.
비록 꼬깃한 사진 한 장이지만 평생 그들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액자 안에서 그들과 함께이길 바라는 과거.
혹은 모두의 기억이자 추억이었던 순간들을 응원한다.
여러분 모두는 훌륭한 반려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