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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펫크리에이터 모리 Oct 24. 2024

쪽팔림을 사랑하기까지

아홉 번째 걸음

나는 항상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다채롭고 따스한 관계가 어렵고도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게 도움이 된 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더욱 그러려고 한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삶이란 표현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고 나니 더욱 그렇다. 


먼저 다가감에 있어 두근거림이나 민망함, 쑥스러움 같은 감정이 들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도 부끄럽다.

살면서 난생처음 본 이국땅의 아무개 씨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저, 괜찮다면 강아지와 사진 한 장만 찍어드려도 될까요?] 하며 묻는 순간순간마다 혹여 거절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나를 늘 주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번, 두 번, 계속해서 쭈뼛거림을 이겨내 보려고 노력하면 결국엔 멋진 사진들이 내게 남았고 그들과 함께한 추억들과 유익한 시간들도 그 안에 함께 깃들어갔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나- 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나는 매번 주저해야 했지만, 또 매번 두근거려야 했지만 그 모든 순간들을 이겨내고 나니 폴더 속에 수백 장의 뿌듯함이 가득 차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쪽팔림은 잠깐이다.'라는 말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이 세상 인간이 만들어낸 무궁무진한 많은 재미있는 것들 중 시도해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대부분이란 사실이 개탄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쪽팔림을 무릅쓰고서라도 항상 '시도'란걸 해보길 택하는 편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저 반려인과 강아지를 찍지 못한다면 집에 가서 무조건 후회를 할 거야- 

시도!

다시는 보지 못할 반려견일 텐데...

그러니까 시도!!

지금 잠깐의 쪽팔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면 나 자신이 원망스러울 것 같은데?

지금 당장 시도!!! 


그렇게 수백 번의 쪽팔림을 이겨내 보고 얻은 삶의 중요한 교훈은 쪽팔림은 멋진 결과를, 배움을 항상 수반한다는 것이었다. 인생의 치트키를 알아버린 사람처럼 나는 이제 쪽팔린 순간이 오면 그 순간이 내게 왔음에 감사하면서 쪽팔림을 즐긴다. 


이 연극의 막이 내리고 나면 한층 더 성장해 있을 거다.



재작년부터는 연기란 걸 배워보기 시작했다. 사진작가 아니에요?라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내겐 여러 가지 직업이 있고 그중 대부분의 것은 그저 배워보고 싶어 '시도' 했다가 일이 된 경우가 많았다. 배우라는 일도 엑스트라로 몇 번, 알바로 몇 번 하다 보니 지금은 그냥 나의 직업 중 일부가 되었다.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기 시작한 건 뉴욕거리에서 만난 반려인들과의 대화에서부터였다. 사진을 찍으며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면 으레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저 학생이었던 나와 다르게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인이거나 프리랜서 혹은 은퇴한 어르신 등등 만나본 사람들의 양만큼이나 다양했다. 그리고 그들과의 통성명? 에서 깨달은 건 그들에게 직업은 그들이 하는 일뿐만 아니라 취미도 일로 여긴다는 것, 혹은 반대로 일도 취미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저는 글 쓰는 작가이기도 하고 영화도 만듭니다. 그리고 때론 밴드에서 드럼도 연주해요.] 

[낮엔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저녁엔 친구네 바에서 바텐더로 일해요. 칵테일 만드는 게 취미거든요.]

[저는 프리랜서 디자이너고 도그워커도 하고 있어요. 저희 집 강아지 산책시키면서 같이 하는 거죠 뭐!]


가끔 그렇게 여러 가지 직업을 나열하는 뉴요커들을 보며 나도 졸업을 하면 사진작가라는 한 가지 직업으로 불리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병행하며 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열망을 갖게 되었다. 조용히 혼자 글을 쓰다가 처음 무대에 올라 사람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그 떨림, 마케터지만 처음 바에 서서 사람들에게 칵테일을 만들어주던 순간의 두려움과 실수했을 때의 쪽팔림을 이겨낸 자들. 


그들은 나름대로 각자의 인생에서 행복을 쟁취한 승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나도 사진작가로도, 배우로도, 회화작가로도, 글 작가로도, 음반을 낸 가수로도, 여러 직업을 향유하며 살고 있다. 그때 길거리에서 내가 주저하고 돌아서지 않았던 그 수많은 순간들은 삶의 전반적인 곳에서 알게 모르게 내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것들은 때론 이불에서 살짝 나는 향긋한 린스향기처럼 살큼 하게 내게 모습을 드러내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한다.


눈치의 나라라는 오명을 가진 사회에서 나만의 행복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눈치 건너편에 서있는 쪽팔림이란 존재를 사랑하는 것에 있다. 세상에 내놓기 부끄러운 글이지만 눈치 없이 내놓는 이 글들도 한아름의 부끄러움 덩어리일지언정 배움이 될 걸 알기에 매일 도전하는 것처럼.


오늘 하루도 한껏 쪽팔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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