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걸음
얼마 전 한 언론 보도에서 반려동물 보유세에 대해 보도한 이후 한차례 거센 논란이 있었다. 이후 정부에서는 반려동물 보유세에 대해 현재 논의 중이지 않다고 발표했지만 보유세 이야기까지 나오는 걸 보니 대한민국도 반려문화 선진국 반열을 향해 가는 발걸음을 내 디고 있는 건 분명히 맞다고 본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거리, 뉴욕에는 반려동물 보유세 정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착각했던 '의무 산책'에 대한 정책이 있다고 하면 믿을 정도로 반려동물 산책에 진심인 도시이지만 여기도 반려동물 보유세에 관련된 법이나 제도는 없다. 현재 전 세계에서 보유세가 존재하는 국가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에 그친다. 그중 독일은 단연 으뜸가는 동물복지 정책을 갖고 있는 나라로, 뉴욕 거리를 다 걷고 나면 나의 다음 행선지로 미리 마음속에 지목해 둔 곳이기도 하다.
보유세는 없지만 뉴욕은 올해 2024년부터 펫샵 금지정책이 시행되어 현재 뉴욕 내에서 펫샵은 반려동물 판매가 아닌 임시보호소에서 보호 중인 유기동물을 가정에 연결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 애초에 보유세를 제정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바로 무분별한 번식과 구매를 막기 위한 것이니 펫샵 금지이던 보유세 부과이던 둘 다 결과적으로 개체수 증가를 막는데 유용한 법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도 둘 중 하나라도 서둘러 제정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나은 반려문화를 향해 가는 길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유세나 펫숍금지정책이 제정되어 바로 시행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사전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특히 보유세가 그렇다. 갑자기 반려동물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하면 분명 반려동물을 버리는 사람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책임감이 없던 사람은 (물론 언젠가도 버릴 여지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었겠지만) 당장 반려동물을 집 밖에 쉽게 내다 버리지 않을까? 저는 보호자가 있어요- 의 표시인 내장칩을 한 채로 거리를 떠돌다 발견돼서 보호자에게 연락해도 데려가지 않는 수많은 안타까운 사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이런 사태에 대해 대비를 하기야 하겠지만, 지금 개식용 금지법 시행을 두고도 개농장주들과 육견협회 사람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보유세 정책도 끝없는 잡음을 계속 안고 가야 할 것은 분명하다.
유현준 건축가는 저서 [공간의 미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에서 선거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세상은 제로섬 게임이다. 내가 표를 얻으면 상대방이 지고, 상대방이 표를 얻으면 내가 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정치가들의 선동에 세상을 지나치게 제로섬 게임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는 디자인을 잘하면 둘 중 한 명만 이기는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 구성원 모두가 만족할 답을 찾을 수 있다."
불가피하게 대립구도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인간이 만든 허점 투성이인 법안들을 그나마 좀 더 낫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예술이 할 수 있다. 가령 건축이나 디자인 같은 실질적인 것들이 아니더라도 무형의 예술로도 법과 제도는 반드시 더 나은 방향으로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 수 있다. 때론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책이, 영화가 세상을 바꾸기도 하는 것 처럼.
지금 한창 논란중인 개식용 금지법에 대해 예술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정부가 두 진영의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사용하고있는 예술적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가?
위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예술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을 한정지어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때로 인간은 너무 눈앞의 것만 보는데 급급한 나머지 더 완곡한 길을 따라가면 쉽게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아니, 어쩌면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해 모른다고 표현하는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행인것은, 그나마 [2023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 중 무려 70%가 보유세를 찬성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기껏해야 50% 정도 될까 말까 일 줄 알았는데, 무려 70%나 된다는 것에 사실 많이 놀랐고 또 안심했다. 우리나라 반려문화 의식의 정도를 보여주는 수치가 이렇게나 올라왔다니 심지어는 좀 감격스럽기도 하다. 정책은 잘 모르지만 그저 나처럼 반려동물의 권리와 이 땅의 생명들이 마땅한 존엄을 누리고 살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 시민들이 이토록 많아졌음에 동물권 이야기를 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향이 분명히 작용을 했으리라.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반려동물권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로서 나의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지점은 매번 새로운 사안이 등장하고 두 가지 의견이 팽배하게 대립할 때에 있다. 보유세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시기상조일 수 있겠지만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길 위에서 펼쳐질 대립들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예술가가 되길.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말한 니콜라 부리오의 말을 공유하며 부족한 지식으로나마 그저 화두를 던지기 위해 쓴 오늘의 글을 마치려고 한다.
“The role of artworks is no longer to form imaginary and utopian realities, but to actually be ways of living and models of action within the existing real, whatever the scale chosen by the artist”
예술 작품의 역할은 더 이상 상상적이고 유토피아적인 현실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선택한 규모에 관계없이 기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과 행동의 모델이 되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