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달쿠미와 고래밥은 여전히 길을 헤매고 있어요.
새도 여전히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고래밥, 우리 제대로 된 쪽으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포레와 아저씨가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갔으면 어떡하지?”
고래밥은 잠깐 멈춰서 달쿠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봅니다.
“그러게 말이야. 사실 나도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희망님께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될까?”
“희망님은 지금쯤 쉴 틈도 없이 동물들을 구조를 하고 계실 거야. 복날을 앞두고는 특히나 더 바쁘시거든. 이맘때쯤이면 인간들이 고기에 미쳐서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 개들이며 심지어 남이 키우는 개까지 잡아다가 탕을 끓여먹는다니까. 개뿐이야? 염소, 오리, 닭, 다 마찬가지야. 희망님의 일을 방해할 순 없지.”
“응...”
“걱정 마! 꼭 포레와 아저씨를 찾을 거니까.”
말은 자신 있게 했지만 고래밥은 지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직 달쿠미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거든요. 그때 달쿠미의 식빵 뒤에서 짹-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 새가 일어났나 봐!”
“이봐 새, 정신이 들어?”
고래밥이 다가가 묻자 새가 번쩍 눈을 뜨더니 사방을 살핍니다. 그리고 발 밑의 식빵을 보고는 희한하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려요.
“이건 뭐지?”
“하하, 정신이 들었구만! 눈이 말똥 한걸 보니 아주 정신이 돌아왔어.”
고래밥이 새 주위를 뱅 돌며 말합니다.
“누구시죠?”
“나는 고래밥이야. 보다시피.”
새가 생전 처음 보는 생명체라는 듯 고개를 다시 갸웃거립니다.
“그런데 제가 왜 여기 있는 거죠?”
“그건 말이죠-”
달쿠미가 목 뒤를 보려 고개를 최대한 왼쪽으로 돌리며 말합니다.
“저희가 묻고 싶은 건데 말이죠...”
“예?”
“제 머리 위로 갑자기 뚝 떨어지셨거든요?”
“아, 그게 그러니까,, 인간들이 저를 좁은 새장에 가둬두고 꽤 오랫동안 빛을 마구 쏴대고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뒀던 건 기억이 나거든요. 그러고 나서는 저를 날려 보내줬는데..”
“줬는데?”
고래밥이 어서 말하라는 듯 재촉해요.
“그게 사실은 제가 처음 하늘을 날아보는 거라, 얼마 날지 못하고 지쳐서 쓰러졌나 봅니다. 그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고래밥이 알겠다는 듯 말합니다.
“아하! 너 인간의 소품용 새 구나! 소품으로 다 쓰면 날려 보내주는 게 아니라 그냥 창밖에 버리는 거야. 희망행성에도 너 같은 새들이 있지.”
희망행성이란 말에 새는 또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어쨌거나 살아서 우릴 만났으니 운이 아주 좋았어. 살면서 쓸 운은 오늘 다 썼다고 생각하라고! 그나저나 날수는 있어?”
다소 얼이 빠져 보이는 새는 끙- 하며 식빵 위를 벗어나 날아올라요.
“그래도 좀 잤더니 개운합니다. 얼마나 빛에 시달렸는지 날면서 계속 어질어질했거든요. 고마워요. 고맙습니다아ㅇ ㅏ......”
날면서 말을 하던 새가 점점 아래로 다시 내려갑니다. 날개를 열심히 푸득여 보지만 자꾸만 아래로 죽 쳐지더니 결국 땅바닥에 내려앉아요.
“아이고 이런, 아직 회복이 안 되었나 봅니다. 미안합니다. 저는 괜찮으니 가셔도 괜찮습니다.”
새가 축 처진 날개를 겨우 들어 보이며 말하자 고래밥이 말합니다.
“다 죽어가는 새를 두고 어떻게 그냥 가?! 달쿠미, 식빵에 다시 올려주자.”
“응. 새님! 제 식빵 위에 다시 올려드릴게요.”
달쿠미가 새에게 손을 내밀자 새는 아니라는 듯 뒤로 물러섭니다.
“살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계속 폐를 끼칠 순 없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봐 새, 그냥 우리가 하자는 데로 하는 게 좋을 거야. 새장 바깥은 처음일 텐데, 여기서는 밥이 제때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널 못 잡아먹어 안달인 천적들도 아주 많다고. 살고 싶으면 우리와 같이 가는 게 좋을 거야.”
“그래도...”
“이게 우리가 하는 일이라니까? 자, 어서.”
달쿠미가 새를 잡아 다시 식빵 뒤에 앉힙니다.
“걱정 마세요 새님, 식빵 위에서는 안전하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딜 가던 중이셨습니까?”
“친구를 찾고 있어.”
“친구라면.. 고래밥님과 같은 친구 말씀이신가요?”
“아니, 여기 달쿠미 같은 강아지 둘을 찾고 있어. 하나는 도넛을 끼고 있고 하나는 와플다리를 하고 있지.”
새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고래밥의 말에 연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한 명은 제 친구고, 한 명은 고래밥님의 친구예요. 원래 희망행성에 있었는데, 누렁아저씨가 아들을 찾아야 한다고 지구로 다시 돌아오는 바람에..”
새는 이제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어 갸웃거리는 것도 멈춘 듯해요. 새를 살피던 고래밥이 달쿠미에게 말합니다.
“이제 막 새장에서 나온 새에게는 너무 과한 정보야. 일단 바깥세상을 좀 느껴봐! 자세한 건 친구들을 찾으러 가면서 더 이야기해 줄게.”
새가 끄덕이곤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매일 마시던 공기와 달라요. 깃털을 파고드는 바람도 난생처음입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각종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곳은 신기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눈을 살며시 뜨고는 구름사이를 가르며 하늘을 나는 새들을 바라봅니다. 어서 회복해서 저렇게 날아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배가 고파 기운이 너무 없어요.
“저....”
“응? 왜. 뭐가 불편해?”
“그게..... 제가 기운이 없는 게 아무래도 먹은 것이 없어 그런 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도...”
고래밥이 달쿠미에게도 배가 고픈지 물어봐요.
“아, 나는 괜찮아. 사실 아까부터 식빵을 조금씩 뜯어먹고 있었거든.”
달쿠미가 배시시 웃어 보이며 민망한 듯 말해요.
“새님은 밥으로 뭘 주로 드시나요?”
“저는 보통 죽은 애벌레나 곡물 따위를 먹습니다.”
고래밥이 길 오른쪽에 나무들이 빽빽한 곳을 가리키며 말해요.
“그럼 저쪽에 잠시 들렀다 가자!”
기력이 없는 새를 위해 고래밥이 여기저기 공중을 헤엄쳐 다니며 먹을 것이 있는 곳을 알려줍니다.
“감사해요.(오물오물) 제가 기운만 차리면 고래밥님의 밥도 찾아드릴게요.(오물오물)”
“고맙지만 사양할게. 난 희망행성의 솜사탕 구름을 먹고살거든. 여기 지구에서는 구할 수 없어.”
“아, 그렇군요.(오물오물) 그 희망행성이라는 곳은 참 신기한 곳인가 봅니다!(오물오물)”
고래밥이 계속해서 오물거리며 말하는 새에게 희망행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무언가 검은 물체가 이쪽으로 빠르게 날아옵니다.
“으악!!”
“고래밥!!”
“고래밥님!”
검은 물체는 까치예요! 고래밥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니고 까치는 고래밥을 쫓아다닙니다. 달쿠미가 까치를 잡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아요. 고래밥은 이제 힘이 들어서 높이 날지 못합니다. 거의 바닥에 닿을 것처럼 헤엄치던 고래밥이 소리칩니다.
“야 이 멍청아! 난 먹을게 아니야!!”
그때예요! 고래밥을 쫓던 까치가 갑자기 쫒는 걸 멈추고는 나무 기둥 뒤 어두운 곳을 바라보더니 깍! 하는 소리를 내곤 날아가버립니다. 달쿠미와 고래밥도 까치가 보고 달아난 곳을 바라봐요.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도넛 낀 강아지 포레와 희망행성 연재는 해당화가 마지막입니다! 완결이야기는 동화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