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품은 절, 백담사
굽이굽이 절벽길을 오르면
자연에 품겨있는 절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평안을 안겨준다. 억지로 참고 있던 숨을 한 번에 크게 내뱉는 느낌이다.
백담사는 가는 길이 극악이다. 당장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절벽길을 버스는 거침없이 내달린다. 처음 보는 기사님을 오롯이 신뢰하고 같이 탄 승객들과 잠시나마 생사를 함께하는 일. 백담사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경건해진다.
백담사에 자주 왔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4년 만의 재방문이었다. 절벽길이 기억에 남아서였는지 쉬이 잊히지 않았던 터라 아주 익숙했다.
절은 변하지 않아서 좋다. 서울에선 아주 익숙한 건물들도 한 번에 사라져 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대부분의 절은 종교시설이기 이전에 문화재이거나 문화재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사라지기 쉽지 않다. 이렇게나 오랜만에 가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굳건함이 좋다.
어린아이가 같은 나무에서 키를 재보듯 같은 절에 갈 때마다 내 마음이 얼마큼 자랐는지를 확인해 본다. 그때의 나는 꽤 행복하고 안정적이었다. 마음도 키처럼 멈추거나 자라는 선택지만 있다면 좋겠다. 내 마음의 키는 그때보다 줄어있는 것 같아 절을 걷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이 머물던 절이라 만해기념관이 있다. '님의 침묵'을 배우던 어린 시절, '날카로운 첫 키스'라는 구절에 키스도 모르던 초등학생들이 킥킥대던 기억이 난다. 조금 더 자라고는 그런 구절들의 의미를 배웠다. '정답 2번 조국, 광복' 같은 정해진 답들을 외웠다. 그때는 시인도 의도하지 않았을 것 같은 시구들을 분석하는 게 참 싫었는데 오히려 그때가 살면서 가장 많은 시를 접할 기회였다.
어른이 되고서는 좀처럼 시를 읽을 일이 없다.
백담사는 한용운보다 전두환이 머물던 절로 더 알려진 것 같다. '응답하라 1988'에도 절밥에 빠진 정봉이가 그를 마주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원래는 그 방이 보존되어 있었는데 2019년에 모두 정리했다고 한다.
대웅전 앞에 가면 한껏 경건해지다가도 조금만 둘러보면 사람들의 활기가 가득 차다. 불자가 아니라도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찾아온 단체관광객부터 큰 불상 앞 약수를 떠먹는 사람들, 그리고 개울에 발을 담그고 신나 하는 사람들까지. 사람들이 지금 이 절에서 느끼는 것만큼만 걱정 없이 행복한 세상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