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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타호텔 Nov 24. 2023

도심에서 만나는 절, 조계사

도시 한 복판의 쉴 곳

절이라고 하면 어디 깊은 산을 힘들게 올라 만나야 할 것 같지만 서울 도심 한 복판에도 언제나 쉴 곳이 되어주는 절이 있다.

절을 좋아하는 이유는 '변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영원할 것 같은 관광지도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도심을 상징하는 동상이나 빌딩도 갑자기 철거하거나 공사를 하기도 하니까.

<냉정과 열정사이>에 나오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 같은 약속을 하기엔 어쩌면 조계사가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경복궁이나 덕수궁 돌담길, 명동 성당도 좋겠지만.)


절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조계사는 인테리어에 진심이다. 변하는 계절에 따라 위에 걸린 등이 매 번 새롭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색색의 연등이 머리 위를 수놓는다. 절이 이렇게 화려한 공간일 수 있다는 게 재밌다.

넓고도 좁은 조계사 마당을 천천히 돌아본다. 천천히 해도 되는데 빨리 걷게 된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것 같고 괜히 시선이 집중된 것 같은 기분.

그러나 돌아보면 각자 할 일을 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다. 이 뻔하고 당연한 답을 왜 매 번 잊어버리고 사는 걸까.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픈만큼 천천히 나아가고 오래 머물러도 된다는 것.

조계사엔 외국인이 많다. 지방에서도 조금은 구석진 곳에 숨어있는 절들에 비해 관광하기 참 좋은 위치다. 경복궁이나 인사동, 청계천과 가까워 들르기 좋다.

절에 가야겠다는 계획 없이도 거리를 걷다 말고 쓱 둘러보고 나와도 되는 곳이라 부담이 없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지만 마음이 편해진다. 마치 종업원이 따라오지 않는 오래된 가게에 들어간 기분이다. 그대로 팔고 있는 철 지난 물건들 속에서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신상을 뒤적여본다.

아주 오래된 익숙한 것들 속에서 약간의 변화를 알아챌 때 조금 설레는 기분이 된다.

불상을 보면 보름달이 뜰 때처럼 자연스럽게 소원을 빌게 된다. 부처님은 내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걸 알아서일까. 기도를 할 때는 넓은 마음이 된다. 괜히 평소엔 생각도 하지 못했던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소원들을 빌어본다. 이런 마음으로 무언가를 비는 이들의 선한 소원이 모여 선한 세상이 되었으면.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사람들보다 각자의 삶에서 행복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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