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장으로 향할 것 같은 버스가 내 앞에 멈췄다. 공항 직원이 알려준 장소가 분명했다. 의심쩍어 운전기사에게 “버스 터미널?” 한 번 더 확인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시내버스터미널까지 향하는 무료 공항 셔틀버스였다. 방금 전까지 머물렀던 깔끔한 공항 그리고 '문명 발상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바로 택시를 탈 걸 그랬나. 입국장을 나서자마자 날 붙잡던 택시 기사들이 떠올랐다.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흥정에 시달리고 바가지 쓴 뒤 속 쓰려하는 것보단 이쪽이 마음 편했다.
공항과 버스 터미널을 오가는 셔틀버스는 버스 십 여대가 정차돼있는 공터에 사람들을 쏟아냈다. 버스마다 다니며 아랍어로 적힌 숫자를 더듬더듬 읽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목적지까지 간다고 알아온 번호는 보이질 않았다. 함께 내린 사람들이 다 제 갈 길을 찾아가고 다음 버스가 내려놓은 사람들마저 다 사라질 때까지 홀로 버스를 찾아다녔다. 급기야 캐리어를 구석에 던져놓고 “나세르 역”을 외치고 다녔다. 기사들은 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참 지나 터미널을 청소하던 아저씨가 내게 먼저 말을 건넸다. “나세르?” 한번 확인하곤 버스기사들을 찾아다니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곤 손을 흔들어 나를 불렀다. 덕분에 40분 만에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막 터키에서 이집트로 넘어온 참이었다. 셀축에서 기차를 타고 이즈미르 공항에 가서 국내선으로 이스탄불까지 이동한 뒤 국제선을 타고 카이로에 왔다. 바로 곯아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여정. 서울에선 버스나 지하철에서 눈을 슬쩍 감고 졸다가도 내려야 할 곳에 도착할 즈음이면 벌떡 일어났다. 귀신같은 귀소 본능이란. 몸이 피곤한데도 여기선 통 잠이 오질 않았다. 괜히 캐리어 손잡이만 한 번씩 꼭 쥐며 버스 안팎을 둘러봤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 버스는 가로등 없는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나타나 손을 흔들 때마다 멈췄다. 사람들이 차장 아저씨에게 목적지를 말하면 그는 고갯짓으로 '가부'를 알려줬다. 이따금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는 곳에 이르면 차장 아저씨는 앞문을 열고 여러 지명을 크게 외쳤다. 그러면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정류장 표시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그곳이 정류장인 듯했다.
버스가 출발하면 차장은 돌아다니며 돈을 받고 표를 내줬다. 신기하게도 새로 탄 사람을 콕 집어내 그 앞에 가서 섰다. 탈 때 받으면 편하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다 바로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내리는 건 네 재량에 달렸다는 듯 승객이 내리고 있어도 아랑곳 없이 출발해버리는 버스가 승객 하나하나에게 목적지를 물으며 돈을 받고 태울 리 없어 보였다. 먼산을 바라보며 무심히 앉아 있는 승객들 틈 속에서 나는 혼자 긴장하며 사람들이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익숙한 듯 움직이는 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3~4살쯤 된 아이들과 함께 탄 부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심에 들어서자 긴장되기 시작했다. 목적지를 지나칠까 싶어 밖을 두리번거렸다. 계속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맞은편 차장 아저씨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더 앉아 있어’라고 눈으로 말하며 마음을 토닥이듯 손바닥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창밖 거리엔 쓰레기가 굴러다녔고, 도로엔 자동차와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사방에선 끊임없이 클락션 소리가 들려왔다.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피라미드도 스핑크스도 궁금하지 않았다. 빨리 다합으로 떠나고 싶었다. (원래 목표는 바로 다합으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타는 것이었지만 '매진'되는 바람에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 일찍 다이빙을 위해 다합으로 항했다.)
열흘 간 다합에서 여유를 즐긴 덕에 간신히 카이로로 돌아갈 마음이 생겼다. 이곳에서 오래 산 다이빙 선생님들과 함께 다니며 이집트 문화나 음식 등을 익혔다. 공항이 있는 샴 엘 셰이크에 갔을 땐 현지 미니버스(승합차 크기의 버스)도 탔다. 막상 타보니 또 혼자서도 탈만할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났다. 그리고 테러 위협으로 관광객이 사라진 이곳에서 조용히 머물다 보니 시끄러운 카이로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생겼다.
카이로의 첫 목적지는 피라미드였다. 누군가 블로그에 정성스럽게 올려놓은 '피라미드 가는 법'을 숙지한 뒤 길을 나섰다. 지하철은 무사통과. 출구로 나가 익숙하다는 듯 다른 사람들처럼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우고 “피라미드”를 외쳤다. 두 번 만에 당당하게 버스에 탔다. 선생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돈을 쥐고 있다 기사가 뒤로 손을 내밀었을 때, 앞사람을 톡톡 쳐 전달을 부탁했다. 차장이 없는 미니버스에선 승객의 손에 손을 거쳐 요금이 기사에게 전달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탈 수 있도록 자리를 좁혀 앉는 것도 이 안의 규칙.
10파운드를 내고 건네받은 거스름돈을 헤아려보니 블로그에서 본 버스 요금과 달랐다.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또 그 사이 요금이 올랐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때, 운전기사에게서 내게 돈을 전달해준 아저씨가 날 보더니 목적지를 물었다. 그러더니 기사와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정황상 관광객인 내게 기사가 요금을 더 받은 듯했다. 승객 아저씨 타박에도 기사가 물러서지 않자 아저씨는 자기 거스름돈 중 1파운드를 집어 내게 건넸다. 어색해진 공기에 괜히 1파운드만 만지작거렸다.
정확한 요금도 버스 노선 체계도 모르니 버스를 타는 게 쉽지 않았다. 바로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없을 경우엔 목적지만 외쳐대는 걸론 부족했다. 그럴 땐 근처 지하철역에 가는지를 물었다. 적어도 지하철 안에선 헤맬 리가 없으니까. 모든 여행지에서 그랬다. 지하철은 역마다 서니 눈치껏 내리면 되고 지나쳤어도 목적지로 돌아가는 게 버스보다 수월했다. 9개 노선으로 얽힌 (분당선, 인천공항철도 등을 포함하면 더 복잡한) 서울 지하철 경력이 몇 년인가. 이집트에선 역 이름을 읽을 수 없어 조금 힘들었지만 대부분 개찰구에 직원이 서있어 종이를 내밀면 방향을 알려주었다.
문제는 잔돈이었다. 이집트 지하철 매표소엔 늘 동전이 부족했다. 요금은 2파운드(약 150원). 지폐를 내밀면 직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돈을 내 쪽으로 다시 쭉 밀었다. 사실 잔돈이 없는 건 지하철만은 아니었다. 슈퍼에서 물을 살 때도 주인은 거스름돈이 없다며 대신 껌 두 개를 건네주곤 싱긋 웃었다. 이건 양반이다. 가끔 잔돈이 없다고 거스름돈을 덜 주는 이들도 있었다. 아주 당당하게. 이집트에선 거스름돈을 받으면 보는 앞에서 바로 맞는지 셌다. 그리고 지갑이 무거워도 악착같이 동전을 만들어가지고 챙겨다녔다.
가게에선 돈을 덜 받든 물건으로 받든 문제가 해결되지만, 지하철에선 마냥 기다려야 했다. 동전을 가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직원들이 “이제 잔돈이 생겼으니 지폐 가진 사람들 오세요”라고 불러줄 리 없었다. 매표소 앞엔 매번 줄이 늘어서있었다. 줄은 있으나 2파운드 가진 사람은 프리패스권이라도 가진 양 앞으로 향했다. 줄을 선 이들은 가만히 길을 비켜줬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 몇몇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주위 사람들에게 몇 장 살 건지 묻고는 표를 '공동구매'했다. 매표소에 갔다 퇴짜 맞고 돌아온 내게도 앞사람이 말을 걸었다. "한 장?"하더니 내 손에 든 지폐를 들고는 창구로 갔다. 신종 사기인가 싶어 도끼눈을 뜨고 그 사람만 응시했다. 창구로 간 그는 표 두 장을 들고 오더니 표 한 장과 정확한 거스름돈을 내게 건넸다. 이후에도 몇 번이나 비슷한 장면을 목격했다. 여행자에겐 당혹스러웠던 이곳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러시아 모스크바 지하철: 각 역사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꾸며져 있다. 지하철을 타고 돌며 역사만 구경해도 될 정도.
-헝가리 부다페스트 지하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통된 지하철. 옛 모습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 지하철: 여성칸이 따로 있다. 남성은 절대 타지 않는다. 문이 닫히기 직전 급히 뛰어든 아저씨는 한 발을 들였다 여성들이 가득한 걸 보고는 불덩이라도 밟은 듯 바로 물러났다.
-남미 버스: 버스를 타면 남미가 크다는 게 실감 난다. 유럽에서 버스를 타고 수차례 국경을 넘었다. 돈을 아끼겠다고 야간 버스를 탄 것도 여러 번. 남미에서의 버스 여행도 자신했지만 한 번에 녹다운됐다.
-포르투갈 리스본 28번 트램: 리스본의 상징과도 같은 28번 트램. 주요 관광지를 돌기 때문에 한 번쯤을 타게 된다. 내부가 혼잡하므로 소매치기 주의해야 한다.
-리스본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 도시 상부와 하부를 연결하기 위해 운행되는 100년 넘은 엘리베이터. 위에는 전망대(유료)도 있다. 교통카드인 비바카드(또는 리스보아 카드)로 무료 이용 가능하다. 한 번에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다 보니 궁금한 관광객들만 탈뿐 현지인들이 자주 이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볼리비아 라파즈 케이블카: 케이블카는 분지에 형성된 도시 라파즈 시민들이 도시 위쪽과 아래쪽을 편히 이동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케이블카에 타는 것만으로 전망대에 오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낮과 밤에 모두 케이블카를 타보길 추천한다. 특히 밤의 케이블카는 우주를 유영하는 작은 우주선에 탄 기분을 선사한다. 대중교통이기 때문에 가격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