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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날이 남긴 단어
by Zak May 13. 2018

스타벅스: 지친 여행자의 안식처

여행 끝엔 늘 아쉬움이 있었다. 낯설기만 했던 것들이 익숙해질 즈음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길을 헤매고 방법을 몰라 어리바리하다 실수하고 물건을 도둑맞고 잃어버리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는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모두 추억이 됐다. 즐거웠던 일도 힘들었던 일도 모두 ‘좋았던 기억’으로 포장돼 한편에 차곡차곡 쌓이는 마법이 일어났다. 여행 후 한동안은 친구들을 만나 여행 에피소드를 풀어놓았다.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에피소드를 하나씩 꺼내 곱씹었다. 여기까지가 내게 여행이었다. 아무리 꺼내려 해도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건 떠나야 한다는 신호였다.   

     

긴 여행엔 되새김질할 시간이 부족했다. 일상으로 돌아가 새로움 가득했던 시간을 그리워할 여유가 없었다. 매일 새로움에 부닥치기 바빴다. 낯선 것 앞에선 늘 ‘설렘 지수’가 올라갔지만 때로 ‘피곤 지수’가 설렘을 압도했다. 그럴 때면 익숙한 것이 그리워졌다. 미리 인터넷을 찾아보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지 않아도 능숙하게 척척해낼 수 있는 '나'일 수 있는 곳이 간절해졌다.


초록 로고는 새로움이 아니라 익숙함으로 날 흥분시켰다. 읽을 수 없는 글자들 속에선 초록 로고와 글자가 더 잘 눈에 들어왔다. 그럴 때면 거침없이 돌진해 입구 손잡이를 잡았다. 급물살에 떠내려가다 몸을 지탱할 든든한 나무라도 발견한 것처럼.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 익숙한 냄새와 풍경이 있는 공간에선 헤맬 필요가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주문할 수 있었다. 늘 마시던 메뉴가 있으니까. 여기선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음악을 들으며 인터넷 검색을 하고 간간이 친구들과 메신저를 주고받는 일상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매번 내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 스타벅스

     

    

부다페스트에선 이상할 만큼 어딜 둘러봐도 흥이 나지 않았다. 워킹투어 현지인 가이드를 따라 도시 곳곳을 누비며 설명을 듣는데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국에선 '부다페스트'란 이름만 듣고도 설레던 곳이었는데. 직전 여행지 비엔나에 마음을 통째로 두고 온 건지, 다음 여행지인 이탈리아로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건지 부다페스트에 묶어둘 마음이 한 조각도 남아있질 않았다. 의무감에 참여한 투어마저 끝나자 할 일이 사라져버렸다. 가봤던 곳을 다시 둘러보며 사진을 찍거나 추천해준 여행지와 식당에 가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함께 투어를 했던 사람들이 일행들과 계획을 세우며 사라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 벤치에 앉아 있다 배고픔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딘가로 가긴 가야겠는데 목적지를 정할 수 없었다. 어부의 요새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주위를 맴돌며 다른 사람들을 따라 인증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걸음엔 활기가 없었다. 그러다 광장에서 익숙한 초록 로고를 만났다. 망설임이 사라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연스럽게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 들고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한국에서 점심시간에 종종 그랬듯이. 자리에 앉아 인터넷을 켜고 밀린 카카오톡 메시지를 정독하며 샌드위치를 해치웠다. 이어폰을 통해 전달되는 익숙한 한국어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멍하니 창밖을 응시했다. 밖에 펼쳐진 풍경이 꽤나 근사했다.  


입으론 아름답다고 중얼거리는데 엉덩이는 도통 떨어질 줄 몰랐다. 겨울철 전기장판을 켜고 누워 귤을 까먹으며 만화책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안락함이란. 옆 자리 사람들이 서너 번 바뀐 후에야, 돌아오지 않을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아까워질 즈음에서야 여행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털고 일어났다.



@부다페스트

         

한국에서도 스타벅스를 자주 찾았다. 취준생 시절에도 회사에 다닐 때도. 오전 시간엔 잠에서 깨기 위해 아메리카노를 들이켰고, 가끔은 화를 삭이기 위해 카라멜 마키아또나 바닐라 라떼를 털어넣었다. 점심 약속이 없는 날이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를 먹곤 했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 대신 주식을 사라는 재테크 책과 기사를 여럿 봤지만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데 돈 벌어서 커피 한잔도 못 마시나!’ 생각하며 매번 커피를 손에 쥐었다.    

     

지겹게 찾던 스타벅스를 여행지에서 이렇게 애타게 찾게 될 줄이야. 때로는 익숙함의 위안을 찾아, 때로는 특별함을 좇아 여행 중 수많은 스타벅스를 만났다. 유럽이 아닌 곳에서 만난 스타벅스는 특히나 반갑고 특별했다.



@베벡 스타벅스. 창가자리에 앉고 싶었는데 경쟁이 치열했다.


@대만 타이페이 101빌딩 35층에 있는 스타벅스. 예약 후에만 입장이 가능하고 최소 구매 금액도 정해져 있는, 좀 까다로운 곳이다.

     

카이로 있는 동안 라마단이 시작됐다. 이 기간 무슬림들은 해가 떠있는 동안엔 물도 마시지 않는다. 당연히 음식점도 문을 닫는다. 이방인에게 강요하진 않는다지만 사정을 다 알기에 거리에선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고 돌아다니다보니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간절해졌다. 검색 끝에 택시를 타고 카이로 쇼핑몰 안에 있는 스타벅스를 찾아갔다. 마치 오아시스라도 만난 것 같았다. 받아든 커피는 두 모금만에 끝이 났다. 다 마시고 나서 미안함에 괜히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오래 전부터 가보리라 마음 먹었던 베벡 스타벅스에도 들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란 수식어가 붙는 곳이다. 주요 관광지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야 했다. (차가 너무 밀렸다) 바다를 바라보고 자리한 스타벅스엔 사람이 빼곡했다. 특히 테라스 자리는 빌 틈이 없었다. 한번 앉아보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여야 했다. 테라스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순간 바로 들어가 자리를 차지했다. 옆 자리에 앉았던 커플이 그 순간 다가와 자기들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눈치를 줬다. 결국 사진만 찍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서러웠던 순간 중 하나.


남미의 스타벅스들도 특별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선 '브라질'이라 적혀있는 스타벅스 시티카드 획득 미션을 스스로에게 내렸다. 첫번째로 들어간 스타벅스에선 카드가 있었지만 직원이 영어를 못해 승강이 아닌 승강이를 벌이다 결국 카드를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다. 떠나기 직전 들른 해변 근처 스타벅스 직원은 충전하란 얘기도 없이 쿨하게 카드를 건네줬다. 페루에서만 판다는 '치리모야 프라프치노'를 마시기 위해 쿠스코 스타벅스에도 들렀다. 광장에 있는 스타벅스에선 언제나 한국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남미의 스타벅스로 불리는 ‘후안 발데스’의 나라 콜롬비아에선 시티머그 구매에 집중했다. 스타벅스 지점은 여럿 있으나 가는 곳마다 시티머그가 없었다. 직원들이 '아마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알려준 지점에 가서야 겨우 머그를 찾을 수 있었다. 솔직히 디자인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고생한 만큼 꼭 사야했다.


한국에 돌아와 일상에 복귀한 뒤에도 스타벅스에 자주 간다. 자리를 비운 1년 사이 동네에 스타벅스가 몇 개 더 생겼다. 아파트만 가득한 주거 단지에 지나치게 많은 게 아닌가 싶은데 갈 때마다 신기하게도 만원이다. 스타벅스에 앉아 진열된 서울 시티머그를 볼 때면 내 방에 있는 시티머그들이 떠오른다. 각 나라와 도시의 대표 이미지를 품고 있는 컵들. 이고지고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던가. 엄마의 잔소리가 무서워 구석에 고이 모셔두고 있지만 가끔 꺼내볼 때면 특별했던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돌아온 지 얼마지나지 않아 벌써 내 삶에 없었던 시간처럼 가물가물해진 지난 1년이 진짜 있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여행하면서 모은 또는 지인들에게 선물받은 스타벅스 컵과 텀블러 그리고 시티카드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의 카페

 

여행 중 스타벅스만 갔던 건 아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카페, 최근 뜨고 있는 카페, 커피 원두 원산지의 카페 등 다양한 카페를 경험했다. 혹 아래 도시에 가게 된다면 한번쯤 들러보시길.


-아일랜드 더블린, 3fe

-아일랜드 더블린, Dublin Barista School  

-영국 런던, Monmouth coffee

-독일 베를린, Bonanza coffee

-폴란드 바르샤바, Tolubie

-헝가리 부다페스트, New York cafe

-이탈리아 피렌체, Gilli

-아르헨티아 부에노스아이레스, Cafe tortoni

-콜롬비아 살렌토, Jesus Martin

-콜롬비아 보고타, Varietale Cafe

-멕시코 멕시코시티, Porfirio


magazine 여행, 그날이 남긴 단어
Zak
직업포토그래퍼
직장 4년차,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과 불안감에 퇴사 후 1년 동안 여행. 고민은 여전하지만 유럽과 남미에서의 추억을 곱씹으며 다르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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