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ak May 27. 2018

방식: 그들 각자의 여행

 여행 중 대화하고 경험하면서 생각하고 때로는 반성한 것들



#하나      


체코 프라하엔 유독 사람이 많았다. 부활절 연휴를 맞아 모두들 이곳으로 몰려왔는지 시계탑이 있는 광장과 카를교에선 사람들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한국 사람들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종종 한국말을 엿듣게 됐다. 이곳에 오신 한국분들 중엔 특히 부모님 연배 단체 관광객이 많았다. 지나가다 본 관광버스엔 일주일 남짓 동안 3개국을 둘러본다고 쓰여 있었다. 체코에만 5일 머무는 내 일정과 그들의 일정표를 머릿속으로 비교했다. 오가는 시간과 시차를 제하고 이게 가능한 일정인가 싶었다.


‘자유여행으로 오셨더라면 좀 더 천천히, 편하게 둘러볼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진짜 여행은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자유여행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예 와보지 않은 것보단 낫지 않을까.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른 나라에서 한없이 헤매기만 하는 것보다는 가이드와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며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구경하는 것이 더 알차고 만족스러울지도. 


함께 유럽을 여행하고 싶어 인천에서 체코까지만 오면 이후 모든 걸 다 책임지겠다고 했는데도 자신이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엄마가 생각났다.           





#     


“얼마나 여행하세요?”      


“1년 하는데 이제 3개월쯤 남았어요”     


“와 진짜 부럽네요. 저는 휴가 내고 겨우 2주 여행하는데”     


“남미 2주면 아깝긴 하네요. 다 둘러보기 힘드니까”     


“그래도 주요 도시는 찍고 가요. 나중에 다시 와야죠”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여행 길어지니 감흥이 줄어요. 휴가로 왔으면 다 좋았을 곳들인데 컨디션 따라 ‘별로’라고 생각하고 지나쳐버리는 곳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     


기대보단 호기심이 컸다. 루브르에 다녀온 사람들은 다들 생각보다 ‘별로’라고 했다. 얼마나 작으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나리자>가 늘 궁금했다. 길을 잃지 않기위해 지도가 필요한 루브르였지만 모나리자만큼은 지나치지 않고 '구경'할 수 있었다. 작품은 보이지 않았지만 주위를 둘러싼 한 무리 사람들이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 미소를 실제로 보면 어떠할까. 미술사를 배울 때 들었던 여러 기법들을 기억 저편에서 소환하려 애썼다.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었으나 앞에서 3초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모나리자와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눈치를 줬다. 누군가 사진을 찍으면 비켜주는 것이 이곳 법도라는 듯 그 앞에선 모두가 그랬다. 그림을 보는 게 우선인지 사진을 찍는 게 우선인지.      


남미 여행지 중 마추픽추는 조금 특별했다. 유일하게 친구와 여행한 구간이라 떠나기 전부터 함께 찍을 사진이 기대됐다. 새벽부터 자는 둥 마는 둥 준비해 마추픽추에 도착했다. 가이드를 따라 내부를 한 바퀴 돌며 친구와 같이 사진 찍으면 좋을 곳을 물색했다. 가이드와 헤어지고 재입장해 찜해둔 장소까지 급히 걸어갔다. 기차 시간 전에 미션을 완수해야 했다.


함께 앉아 사진을 찍고 싶었던 바위 위엔 한 남자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발아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남자가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일어날 때까지 주위에서 얼쩡댔다.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결국 “죄송하지만 저희 사진 좀 찍으려고 하는데”라고 말을 건넸다. 남자는 사진을 찍어달란 얘긴 줄 알고 흔쾌히 일어나 우리 사진을 찍어줬다. 하지만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찍고 싶다고 하자 비켜달란 얘기였단 걸 눈치챘는지 약간 싫은 기색을 내비쳤다. (내 기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어주고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찍어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또 기회를 기다렸다. 그곳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뒤에서 ‘좀 비켜주지’ 중얼거리다 자리를 떠났다. 바라보는 것이 우선인지 사진을 찍는 게 우선인지.





#      


“저는 원래 느긋하게 여행하는 걸 좋아해요. 지내다 좋으면 더 있고, 떠나고 싶은 곳이 생기면 그곳으로 가려고요.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안 정했어요. 매일 뭘 할지 계획도 없어요. 보통 그날 끌리는 대로 가고 싶은 곳에 가요. 현지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관광지나 로컬들만 아는 맛집에 주로 가고. 때로는 현지인들처럼 시장에 가서 재료 사다가 요리도 해 먹고 그러는 거죠. 살아보는 것처럼 지내는 게 진짜 여행 아니겠어요?”     


“여행지 관련 서적을 한 다섯 권쯤 읽었어요. 블로그에서 정보도 엄청 찾아봤고. 언제 다시 와볼 수 있을지 모르는데 왔을 때 이 도시의 모든 걸 다 보고 가야죠. 나중에 지나가고 나서 ‘그때 거길 갔어야 했는데’ 후회하고 싶지 않거든요. 유명 맛집, 사진 찍기 좋은 곳, 할인 방법과 가장 효과적인 루트, 기념품을 사기 좋은 곳 등을 꼼꼼히 알아보고 떠나야 마음이 편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일정은 꽉꽉 채워요. 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가야죠.”           



#다섯      


“혼자 여행하세요? 대단하네. 어떻게 혼자 다녀요?” 많은 사람이 물었다. 같이 갈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고 간단히 말했다. “무섭지 않으냐”는 질문엔 조심하면 된다고, 심심하지 않느냐는 물음엔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답하곤 했다. 홀로 다니면 확실히 편하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페이스로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 갈 곳을 정하는 데 의견 조율이 필요 없다. 걷다 지치면 언제든 카페에 들어가 쉬어도 된다.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회복될 때까지 노트에 이것저것 끼적이고 멍 때리며 퍼더앉아 있어도 괜찮다. 여행 중엔 누구와도 쉽게 말을 트게 되는 이상한 힘이 생긴다. 그래서 생각보다 외롭지도 않다. 누군가는 혼자 여행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말한다. 카트린 지타의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는 그 이유를 잘 설명한다.      


하지만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바란 순간들이 있었다.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타고 기암괴석을 내려다보았을 때가 그 중 하나다.  공중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동시에 떠오른 열기구 떼 그리고 기암괴석이 붉게 물드는 장관을 바라보며 성능 좋은 카메라보다는 그 순간 같이 음악을 나눠들을 사람이 간절해졌다. 한국에 돌아가 “그때 그거 말이야” 입을 떼자마자 표정부터 변해 말하지 않아도 그 때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 장면이 언제든 그 모습 그대로 눈앞에 재생될 것 같았다.  




이전 06화 우체통: 숙성된 마음 배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