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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May 20. 2018

우체통: 숙성된 마음 배달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한참 지나 친구에게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나 엽서 받았어. 집에 오니 책상 위에’란 문장엔 느낌표와 ㅋㅋㅋㅋ가 가득했다. 책상 위에 놓여있었을 페르난도 보테로 그림이 그려진 엽서를 보았을 때, 좁은 공간에 깨알같이 적힌 글씨를 읽었을 때, 콜롬비아 우표와 소인 그리고 두 달도 더 전에 보냈다는 날짜를 확인했을 때,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먼 곳에서 온 엽서를 받아 든 이의 마음이었던 적이 있기에 그녀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짐작해볼 뿐이었다.       


청구서만 날아들던 더블린 집 우편함에서 반가운 이의 글씨를 발견할 때면 심장이 쿵쾅댔다. 나중에 본다고 글자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급했다. 그 자리에 선 채로 편지를 다 읽어버렸다. 그러고 나서도 2층 방으로 향하는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계속 본다고 늘어날 리 없는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카톡으로 혹은 말로 언젠가 한 번쯤 들었을 이야기들인데도 문장의 온도가 2도쯤은 더 높게 느껴졌다. 일찍부터 차가워지는 더블린 공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더블린의 초록 우체통 그리고 여행 중 내가 더블린 집의 내게 보낸 엽서들


여행 중 집으로 꽤 많은 엽서를 보냈다. 딸이 떠나고 허전해졌을 마음을 조금이나마 채워주고 싶었다. 첫 여행지 파리를 시작으로 국가를 이동할 때마다 엽서를 썼다. 때로는 마음고생시키고 온 데 대한 미안함과 걱정을 덜어줄 씩씩함을, 때로는 좋은 것들을 함께 즐길 수 없는 안타까움을 글로 옮겼다. 언제든 전화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왠지 손으로 한 글자씩 꾹꾹 눌러 담고 싶었다. 말로는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딸이라 바로 반응을 볼 수 없는 편지가 더 편했다.      


집으로 보낼 때마다 P군에게 줄 엽서도 함께 썼다. 오매불망 나의 귀국을 기다리는 P군에게 나는 늘 여행지에서의 ‘신남’을 전달했다. 원하는 내용이 아니었을진 모르겠지만, P군은 엽서를 받은 뒤 늘 인증사진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가끔은 도시를 거닐다 생각나는 얼굴들을 위해 펜을 들었다. 바르셀로나에선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 벨기에에선 여기서 교환학생을 하고 돌아와 늘 벨기에 얘기 달고 살던 동생에게 그리고 오래전 함께 르네 마그리트 전시회를 함께 갔던 오랜 벗에게 엽서를 띄웠다. 베를린 영화제에 가선 비슷한 영화 취향을 가진 친구에게 (공짜이지만 살 수는 없는) 영화제 엽서를 보내주었다. 그들의 마음도 조금은 따뜻해지길 바라며.      



@엽서 그리고 우체통


나라를 옮길 때마다 미션처럼 엽서를 쓰다 보니 상점을 지날 때면 자연히 엽서에 눈길이 갔다. 기왕이면 그곳을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이미지를 고르고 싶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기념품 엽서 중에선 마음에 드는 걸 찾기 힘들었다. 오랫동안 선택을 받지 못한 듯 모서리가 해지거나 색이 바랜 것들을 다수. 꽤 괜찮은 게 있더라도 나중에 더 예쁜 엽서를 발견할 것만 같아 쉽게 사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 날이 다가올 때가 돼서야 한 장을 겨우 집어 들곤 했다.      


엽서를 고른 뒤엔 후련한 마음으로 빈칸 채우기에 돌입했다. J.K. 롤링이 <해리포터>를 썼다고 알려진 카페에서, 햇살이 적당히 비치던 보테로 미술관 벤치에 앉아, 다리가 아파 주저앉은 이름 모를 공원에서, 해변 벤치에서 바람을 맞으며, 잘 준비를 마치고 호스텔 침대에 누워서. 이상하게도 부족하게만 보였던 빈 공간이 펜만 들면 넓게 느껴졌다. 긴 시간 함께하며 ‘잘 아는 사이’라 자부했지만 무슨 말을 써야 하나 한참 애꿎은 펜만 똑딱거렸다. 받을 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얘가 요즘 어떻게 지내고, 뭘 고민하고 있더라’ 여러 번 되뇐 후에야 비로소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이후의 문장을 겨우 이어갈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사실 몇 번 더 멈칫거렸다.      


평소 대화하며 흘리듯 했던 이야기들, 그들의 고민이라 짐작되는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거기에 더할 말을 한참 동안 생각했다. ‘안다’ ‘이해한다’는 말을 쉽사리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조금씩 서로의 길이 달라졌다. 결혼을 하고 새 가족들이 생긴 뒤에는 더더욱. 과거 함께 했던 일을 얘기할 땐 부연설명이 필요 없었지만, 현재의 이야기를 할 땐 이해하기 위해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에게 마치 다 알은체 하며 얘길 건네기가 조심스러웠다. 그것이 흔한 응원의 메시지일지라도. 또 꺼낸 이야기가 혹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고. 손바닥만 한 종이 한 장을 앞에 두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엽서가 도착하면 친구들은 큰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답답한 마음에 숨구멍을 뻥 뚫어줄 내용도, 가슴을 저릿하게 할 엄청난 문장도 아니었겠지만. 한두 달 묵힌 문장에서 배어 나오는 숙성된 진심만큼은 제대로 전달된 듯했다. 친구들의 엽서 인증사진을 받을 때면 그래서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했다.      


어느날  집에 놀러 갔다 거실에서 내가 보낸 엽서를 발견했다. 고맙고 반가우면서도 그때 쓴 문장들을 다시 볼 (정확히는 함께 볼) 자신이 없어 못 본 척 넘어갔다. 잘 간직해준 친구에게 속으로만 고마움을 표했다. 엽서를 받았을 때 그들의 하루가 즐거웠길 그리고 거실을 지나다 엽서가 눈에 들어올 때면 누군가 항상 자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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