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게도 지금껏 돈 걱정 없이 살아왔다. 본인들에게 쓸 건 아껴도 자식들이 하고 싶다는 건 다 하게 해 준 부모님 덕분이었다. 퇴사를 앞두고 처음으로 돈 앞에 심각해졌다. 부모님 울타리도 안정적 월급도 없는 삶이 도무지 예측되지 않았다.
1년간 여행하려면 얼마나 필요할까. 틈날 때마다 다른 여행자들의 후기를 검색했다. 가진 돈에 예상 퇴직금을 더해 예산을 세웠다. 계산기 두드리길 여러 번. 굳은 결심에 조금씩 금이 갔다. 한두 달만 더 다니면 여행 경비를 좀 더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여행이 한층 완벽해질 것 같았다. 완벽한 때를 기다리며 시간이 흘러갔다. 불안감에 쉽사리 떠나지 못하면서도 또 떠나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결국, 통장에 있는 만큼만 둘러보고 오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행 초기엔 물 한 병 사 먹은 것까지 가계부에 적었다. (적는다고 화수분처럼 돈이 솟아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곧 그만두었다) 영수증도 꼬박꼬박 챙겼다. 여행을 마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잔고를 자주 확인했다. 간식 하나 사 먹으려 해도 선뜻 계산대까지 갈 수 없었다. 가격을 비교하며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휴가 때 해외에 나가선 보상심리로 한국에서보다 더 펑펑 쓰곤 했는데… 다음 달 통장에 찍힐 숫자가 없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자연히 푼돈에 민감해졌다. 회사 다닐 땐 귀찮음에 굴복해 고민 없이 내버렸을 몇 백 원, 몇 천 원을 아끼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500원쯤 하는 화장실 이용료가 아까워 매번 무료 화장실을 찾아 헤맸다. 조금이라도 싼 버스표와 투어를 찾아 이 회사 저 회사 문턱을 오갔고, 돈을 아끼려 공항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다. 흥정해놓고 목적지에 도착해 말을 바꾸는 택시 기사들과 천 원을 놓고 승강이하고, 공짜라고 꾀어 끌고 다녀놓고 나중에 팁을 요구하는 가짜 가이드들과 말다툼하길 여러 번.
가끔씩은 스스로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같은 시간 친구들은 회사 책상에 앉아 연신 내게 부럽다는 말을 쏟아냈다. 속사정을 알고도 같은 마음일까. 그건 찰나의 마음에 불과했다. ‘여행자 지수’에 맞춰 살아가는 장기 여행자에겐 저렴하게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다른 여행자들이 올린 최저 가격 정보가 늘 내 기준이 됐다. 그보다 돈을 더 내면 괜히 마음이 상했다. 그래 봤자 대게 천 원, 이천 원 남짓이었지만 그땐 그 돈이 10만 원, 20만 원쯤으로 느껴졌다. 돌아다니느라 힘들어도 예상보다 저렴하게 예약하면 금세 기분이 풀어졌다. 여행지에선 싼 걸 찾아다니는 게 궁상맞은 게 아니었다. 우러러볼만한 일이었다. 장기 여행자에겐 발품과 흥정이 필수 덕목이니까.
예비 여행자들은 항상 묻는다. “이 루트로 여행하려면 얼마나 들까요?” 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누구도 속 시원히 답을 내려줄 수 없다. 여행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행기로 이동하며 주로 일인실을 이용하는 사람과 음식을 만들어 먹고, 카우치서핑, 히치하이킹 등을 활용해 여행하는 사람의 경비는 다를 수밖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로 일하면서 몇 백 만원으로 수년간 여행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선택과 집중. 예산에 맞춰 여행하기 위해 나는 몇 가지 규칙을 세웠다. 유럽 교통수단은 한 달 전에 예약, 남미에선 버스로 10시간 이상 걸리는 이동은 비행기 이용, 택시는 되도록 타지 않기, 1박 숙박비 기준은 20유로, 각 도시에서 유명한 음식은 꼭 맛보기 그리고 버킷리스트를 위해선 돈을 아끼지 않기.
제일 돈이 많이 든 항목은 이동이었다. (계산은 해보지 않아 확신은 없다.) 한 번에 목돈이 나가는 교통수단 예약 때면 자못 심각해졌다. 회사원일 땐 돈보다 시간이 가까웠지만 ‘시간 부자’인 장기 여행자가 되고는 최대한 저렴한 방법 찾기에 골몰했다. 유럽에선 야간 버스를 자주 탔다. 짐 때문에 어마어마한 추가 요금이 부과되는 저가항공보단 하루 숙박비까지 아낄 수 있는 버스가 훨씬 좋았다. 도심지에 들어갈 때도 버스터미널이 공항보다 편했다.
남미 첫 여행지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이과수 폭포로 이동할 때도 당연히 버스를 탔다. 40만 원이 넘는 비행기 티켓을 감당할 수 없어 ‘26시간 버스’에 겁 없이 올랐다. 그간 수없이 장거리 버스를 타봤기에 거뜬할 거라 자신했다. 좌석은 비즈니스석처럼 넓고 아늑했다. 하지만 15시간이 지나자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버스가 중간중간 휴게소나 버스터미널에 섰지만 나는 내려서 밥을 먹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못했다. 언제까지 오란 얘기가 따로 없어 (얘길 했는데 못 알아들었을지도) 혹여 버스가 날 두고 출발할까 봐 나갈 수 없었다. 몸에서 기운이 쭉쭉 빠져나갔다. 머리를 제대로 들고 있을 수조차 없었다. 다시는 10시간 넘는 장거리 버스는 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돈이 좀 들더라도 원활한 여행을 위해선 이 편이 나았다.
먹고 자는 덴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1박 20유로 기준 내에서 고른 숙소 대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전 오랫동안 검색한 보람이 있었다. 후기를 보며 가격, 위치(대중교통이 가까이 있는 곳), 베드 버그 유무, 난방 등을 꼼꼼히 따졌다. 가격을 포기하면 나머지를 모두 얻을 수 있었지만 가격이 제일 중요했기에 숙소 검색에 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이들은 카우치서핑을 적극 활용했다. 현지인이 자신의 집 일부를 여행자에게 제공하는 카우치서핑을 이용하면 숙박비를 들이지 않고 여행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돈도 아끼고 현지인과 생활하며 그곳 문화를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숙소에서만큼은 편히 있고 싶었다.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오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선의를 가장해 일어난 끔찍한 범죄도 카우치서핑에 발을 들일 수 없게 했다.
숙소 시설에 예민하지 않고 '자본주의 마인드'를 가진 덕에 여행이 수월했다. 돈을 낸 만큼만 기대하면 불평할 일이 없었다. 에든버러 호스텔은 여행 중 묵은 숙소 중 가장 별로였다. 주위에 눈에 띄는 사람만 열 명이 훌쩍 넘는 데 샤워실은 하나뿐. 한참 기다려 들어간 샤워실은 골방 같았다. 옷이 젖을까 봐 샤워기 물을 틀 때면 벗어놓은 옷을 흘끔흘끔 지켜봐야 했다. 침대는 뒤척일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났다.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는 잠의 세계로 가려는 날 자꾸만 원래 자리로 데려다 놓았다. 1박에 10파운드. 제 값어치를 하는 숙소라 생각했다. 선택은 나의 몫이니까.
여행하며 먹는 건 즐거움이자 괴로움이었다. 도시마다 유명한 음식을 맛보는 건 흥미로웠지만 매끼 뭘 먹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보통 호스텔 주인들이 추천하는 맛집을 찾아갔다.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을 가야 진정한 여행이지’와 같은 거창한 의도는 없었다. 이런 곳이 대부분 싸고 맛있었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남미에선 로컬 식당이 좀 버겁기도 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기본 단어 몇 개면 한 끼를 즐기기 충분했다. 닭고기(Pollo·뽈료), 고기(Carne·까르네), 주스(Jugo·후고) 맵다(picante·삐깐떼) 달다(dulce·둘세) 등만 알고 가면 된다.
그 외엔 돈 들어갈 일이 별로 없었다. 여행 중 짐이 늘어나는 건 재앙. 반강제로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다 보니 쇼핑을 거의 하지 않았다. 기념품이나 좀 살뿐. 오히려 버리기 바빴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처음엔 화장도 했지만 화장이 먹지 않을 만큼 탄 뒤엔 화장도 포기해버렸다. 화장품 살 필요가 없어졌다. 제대로 계산해보진 않았지만 여행 중 한 달 사용 비용(투어 제외)이 한국에 있을 때 매달 카드값보다 적었던 것 같다.
덕분에 버킷리스트 대부분을 지울 수 있었다. 아무리 비싸도 쓸 땐 확실히 쓰니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가서 영화를 보고 (아쉽게 일정이 안 맞아 한국 출품작은 못 봤다) GV에도 참석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기념품 가방까지 줄을 서서 샀다. 오랫동안 가보길 소망한 페스의 테너리(천연 가죽 염색 공장)를 구경하고 모로코 사하라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밤하늘 가득 채운 별을 바라보기도 했다. 다합에선 우여곡절 끝에 다이빙 자격증을 땄다. 다이빙은 못 했지만 갈라파고스에 가선 벤치에 누워 휴식을 즐기는 바다사자들과 셀카를 찍고, 거북이들과 물속에서 함께 헤엄쳤다. 동이 트기 전 열기구를 타고 올라 떠오르는 태양과 기암괴석이 만든 카파도키아의 장관을 한 눈에 내려다보기도 했다. 콜롬비아에선 분홍빛 물이 흐르는 카뇨 크리스탈레스 지역을 누비고 다녔다.
인천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 여행자에서 생활인이 됐다. 열심히 쓰고 현실로 돌아와 다시 통장을 펴본다. ‘잔고 0원으로 돌아오기’란 출발 전 목표보단 돈이 많이 남았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친구들이 결혼 준비하는 얘기, 내 집 마련을 실현해가는 얘길 들을 때마다 여행지에서 쓰고 온 돈과 여행하는 동안의 기회비용이 떠올라 왠지 후회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져있다는 느낌은 덤. 후에 생각이 바뀔진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그때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여행을 통해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곳들이 추억의 장소가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