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였다. 더블린에 살면서 물건을 산 기억이 없는데 6개월 전 들고 왔던 가방에 짐이 다 들어가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으로 한가득 짐을 부쳤는데. 공항버스 시간이 다 되도록 정리는 끝나질 않았다. 짐 없이 반년 간 떠돌 생각에 짐이 영 줄질 않았다. 혹시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넣고 빼기를 반복한 끝에 스웨터 두어 개와 비상식량으로 챙겼던 신라면, 노트 등을 책상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집을 나설 수 있게 됐다.
캐리어와 그 위에 보조가방, 숄더백과 반대편 어깨에 멘 에코백. 추리고 추려도 가방이 4개였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부터 녹록지 않았다. 도로에 난 작은 홈에도 캐리어가 휘청댔다. 인도는 왜 이렇게 자주 끊어져있는지. 연석이 나타날 때면 한 뼘도 안 되는 턱을 오르내리기 위해 한 번씩 숨을 골라야 했다. 눈에 익은 풍경들을 마지막으로 지나갔다. 짐에 집중하느라 더블린과 작별 인사를 나눌 틈이 없었다. 겨우 시간에 맞춰 공항버스에 오른 뒤에야, 새벽부터 땀범벅이 된 이마를 훔치며 빠르게 지나가는 더블린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어쩌면 다시는 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도시를.
촉촉해진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권을 내미는 내게 체크인 카운터 직원은 짐이 신청한 무게를 넘었다며 50유로를 내야 한다고 했다. 익숙한 듯 짐을 정리하고 다시 와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다음 사람에게 자릴 내주고 3초간 멍해졌다. 곧 정신을 차리고 비켜나 캐리어를 열어젖혔다. 짐을 잔뜩 꺼내 숄더백에 욱여넣고 손에도 잔뜩 들었다. 어깨가 두 뼘은 내려앉은 듯했다. 더 이상은 무리. ‘차라리 내고 말자’ 씩씩대며 카운터로 향했다. 고작 2kg 줄었을 뿐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 30유로를 내야 했다. “비행기에 실리는 내 짐 무게는 어차피 같은 거 아니냐”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규정대로 하는 직원이 무슨 죄인가.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버릴 수 없는 ‘짐덩이’는 이동 때마다 창의적으로 날 괴롭혔다. 그때의 기억은 훈장처럼 온몸의 신경과 감각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돌길과 계단, 흙바닥과 눈길에서 가방을 끌고 갈 때의 촉각, 바퀴가 고장 난 캐리어를 끌 때 쉴 새 없이 흘러내리던 땀줄기, 만원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눈치 보며 짐이 이리저리 굴러가지 않게 꼭 붙들고 있던 손에 박인 굳은살, 늦은 밤 또는 이른 새벽 골목길에 쩌렁쩌렁 울리던 덜덜거리는 소리, "어떻게 저렇게 큰 짐을 들고 다니냐"며 놀라워하던 사람들의 반응, 지하철 계단 앞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때면 도와주던 사람들의 친절함으로.
중간에 배낭으로 바꿔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더블린에서부터 심상치 않았던 캐리어 바퀴가 브로츠와프에서 프라하로 가던 길에 아예 멈춰버렸다. 코앞에 버스터미널을 두고 10분 동안 씨름하며 말 그대로 캐리어를 ‘끌고’ 가야 했다. 프라하 일정이 부활절 연휴와 겹치는 바람에 급하게 가방을 사야 했다. (연휴엔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다.) 쇼핑몰 안 가방 가게마다 다니며 가격을 비교했다. 거리를 걸을 때도 거리 풍경보단 캐리어 파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오롯이 반나절을 쏟아 신중하게 빨간색 캐리어를 골랐다. 남은 여정을 계속 함께 할 거라 생각했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캐리어가 퍼져버렸다. 이제 캐리어란 놈과 진짜 헤어져야 하지 않을까.
배낭파(派)는 유사시 금방 도망갈 수 있고, 돌길 등에서 이동하기 편한 배낭이 좋다고 했다. 눈길의 추억이 떠올랐다. 쏟아지는 눈 속에서 배낭을 멘 사람들은 저벅저벅 걸어가는데, 나는 살짝 녹은 셔벗(샤베트라고 쓰고 싶다) 같은 길 위에 흔적을 남기며 가방을 끄느라 자꾸만 뒤처졌다. 바퀴에 뭉친 눈덩이가 걸음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캐리어파(派)는 한 번도 배낭을 메 본 적 없는 사람이 짐을 짊어지고 다니면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몸살이 날거라 했다. 짐을 싸거나 물건을 꺼낼 때도 캐리어가 훨씬 편하다고 장점을 어필했다. (배낭 중에 가운데 지퍼를 열어 캐리어처럼 펼칠 수 있는 게 있긴 하다.)
사실 본질은 짐 그 자체였다. 캐리어냐 배낭이냐가 아니라 짐을 줄여야 했다. 그동안 ‘혹시’가 자석처럼 자꾸만 짐을 끌어 모았다. 혹시 춥거나 더울 수 있으니 이 옷 저 옷 필요하고, 혹시 원하는 샴푸와 화장품을 안 팔 수 있으니 챙겨야 하고, 혹시 비가 올지 모르고, 혹시 심심할 수 있고, 혹시 빨래를 못 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혹시’란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것을,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진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살기 위해 챙기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버리기 시작했다.
책이 먼저 사라졌다. 욕심부리며 이고 지고 온 한국어 책들을 읽고 묵었던 숙소에 두고 떠났다. 여행지의 추억이 묻은 물건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버려야만 했다. 옷도 하나 둘 정리했다. 땀을 많이 흘리거나 비를 맞은 게 아니라면 매일 같은 옷을 입어도 괜찮았다. 한번 옷을 꺼내면 한동안 같은 옷을 입었다. 캐리어를 뒤적여 옷을 찾고 다시 정리해 넣는 것도 일이니까. 빨 때가 된 옷은 세탁기 대신 쓰레기통에 넣었다. 진짜 필요한 옷가지를 종류별로 두세 개씩만 남겼다.
매번 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도대체 남들은 뭘 들고 다니는지 궁금해졌다. 줄이고 줄여도 이 만큼. 별 것 들어있지 않아도 이렇게 무거운데, 저들 가방엔 뭐가 들었을까.
호스텔에서 만난 어떤 이들은 오전 내 자다 저녁 무렵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흘끔 본 그들의 가방에선 커다란 화장품 파우치는 물론, 고데기, 구두, 드레시한 원피스, 향수 같은 것들이 계속 나왔다. 어떤 이는 커피 프레스기를 꺼냈다. 커피를 좋아해 커피로 유명한 도시를 갈 때면 커피콩을 사서 커피를 내려 먹는다고 했다. 프레스기 옆엔 휴대용 그라인더도 함께 있었다. 입이 떡 벌어진 내게 그는 “생각보다 무겁거나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할 일이라곤 요리하고 먹는 거밖에 없었던 조용한 도시에서 만난 한국 여행자는 닭볶음탕 양념을 들고 나왔다. 덕분에 닭볶음탕 파티가 열렸다. 그녀는 “인스턴트 미역국도 들고 왔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여행 중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끓여주기 위해 챙겨 왔다고 했다.
다음에 또다시 짐을 싼다면, 그땐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짐이 될 물건들은 절대 넣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또 필요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으니까. 다이어리는 제일 먼저 가방에 넣을 것이다. 짐을 쌀 때면 이 두꺼운 다이어리를 왜 한국행 소포에 넣지 않았을까 후회했지만 걷다 지쳐 카페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잠들기 전 하루를 마무리할 때 이만큼 좋은 친구가 없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때를 추억할 수 있는 것도 다 다이어리 덕분. 나라별 스타벅스 머그컵도 새 도시에 갈 때마다 잊지 않고 사모을 것이다. 들고 다닐 걱정에 구매할 때마다 수 십 번 망설였지만 바라볼 때마다 뿌듯해지는 기념품이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한 끼 대접할 수 있도록 레시피와 간단한 재료(양념이나 레토르트가 되겠지만)도 챙겨보려고 한다. 아, 필름 카메라와 필름도 포기할 수 없겠지.
-침낭: 호스텔 침구가 찝찝할 때 쓰면 좋다. 난방이 잘 되지 않는 숙소에서도 유용했다. 야영 목적이 아니라면 1만 원 대로 충분하다.
-경량 패딩: 부피가 크지 않아 휴대하기 편하고 활용도가 높다.
-슬리퍼: 외부 공용 샤워실을 쓰는 숙소에 묵는다면 필수다.
-자물쇠: 호스텔 사물함 이용 시 자물쇠를 빌려주며 돈을 받는 곳이 대부분이므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핸드폰 스프링: 소매치기가 불안하다면 지갑에 스프링을 달아 가방에 연결해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충전기 케이블: 여분을 하나 더 챙기면 좋다. 모든 정보가 휴대전화에 들어있기 때문에 갑자기 고장 나 충전을 못하게 되면 당황스럽다. 기분 탓인지 한국이 제일 싼 거 같다.
-전자도서관 앱: 무료로 e-book을 대여할 수 있다. 책을 다운로드하여 놓으면 비행기나 장시간 버스에서 무료함을 달랠 수 있다. 가이드북 이용 시에도 유용하다.
-PP카드: 신용카드 연회비가 부담될 수 있지만 공항 물가를 고려하면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편히 쉬고 식사도 할 수 있으니 장기여행엔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