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어느 날...
아마 2018년 경 가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날처럼 아침에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께서 대뜸 물으십니다.
"시간 좀 낼 수 있니?"
"예, 무슨 일이 생겼어요?"
"일은 무슨... 내가 죽을 병에 걸리면 치료하지 말라고 신청을 하는 것이 있다며? 그거 신청하러 같이 가자."
"아, 연명치료포기각서 말이죠?"
나중에 알고보니 정확한 이름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였습니다.
현대의학으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료행위를 거부한다는 신청서입니다.
사실 저도 언젠가는 신청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며칠 후에 어머니를 모시고 건강보험관리공단을 방문했습니다.
신청 절차는 아주 간단해서, 신청서만 한장 작성해서 제출하면 되더군요.
어머니와 저의 신청서를 제출하는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신청을 마치고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는데 어머니께서 또 한마디 하십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이상해지면 망설이지 말고 무료 요양원에 집어넣어라. 나는 절대 자식 신세 지지 않을거니까..."
그 말씀은 그 전에도 여러 번 하셨기에 알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어머니는 매년 치매검사를 받으셨습니다.
검사라 해 봐야 보건소를 방문해서 오늘이 며칠이냐, 생일이 며칠인지 아느냐는 정도의 질문에 답하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점수가 80점 정도 나왔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치매의심 소견은 60점 이하부터 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치매 검사를 한 보건소 직원이 어머니는 절대 치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장담을 하더라고 무용담을 전하듯 큰 소리로 얘기하시곤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 때 우리 가족 누구도 어머니가 치매환자란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께서는 당신이 치매에 걸릴 지 모른다고 늘 걱정을 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요.
그리고 2022년 9월, 저는 정상이 아닌 어머니를 마주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쓸 글들은 치매환자를 모시는 가족의 고생담이 아닙니다.
치매환자를 대하는 태도나 방법같은 것을 가르치려는 책은 더더욱 아니고요.
다행히 어머니는 아직 아주 초기 단계에 머물러 계십니다.
공식적으로는 장기요양등급 5등급이며 '인지 능력 및 기억력 저하 등의 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상태'로 정의됩니다.
가족 중에 중증 치매 환자가 있는 분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5등급도 치매냐고 핀잔을 하시겠지만 지난 1년 간 저는 많은 생각을 하고, 또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치매환자가 아니라, 어머니가 치매환자라는 말을 듣고 그런 상황에 적응해 가는 평범한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시고 변한 것은 어머니가 아니고 저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