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1)
코로나 종식이 선언되자, 어머니는 이제 성당에 다시 나갈 수 있다고 좋아하십니다.
성당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다니셨는데 거의 3년 넘게 텔레비전으로 평화 방송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셨으니 코로나 종식을 그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겁니다.
그때부터 일요일 8시 30분이 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집을 나서십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성당에 가서 10시 10분 경 집에 돌아오시죠.
저와 동생들은 모두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언젠가는 다시 나가야지 하면서 미루기만 할 뿐, 평소에는 성당에 거의 나가지 않습니다.
누가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천주교라고 대답은 하지만요.
처음에는 9시 40분 경 어머니 댁에 도착하여 어머니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성당에서 아파트까지는 잘 찾아오시거든요.
그 다음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까지도 문제 없이 올라오십니다.
그러나 문을 여는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열 번이면 서너 번 정도는 카드키가 달린 목걸이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시거나 목걸이를 꺼내 들고도 도어락 어디에 갖다 대야 하는지 허둥지둥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밖에서 문을 열려고 필사적으로 이런 저런 노력을 하시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잠시 기다려 봅니다.
그러나 결국 참지 못하고 안에서 문을 열어드리죠.
문이 열리고 공포에 질려있던 어머니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피어나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웃을 수가 없습니다.
제발 성당에 안 나가시면 안 되겠느냐고 몇 번 부탁을 드려 보았지만 절대로 고집을 꺾지 않으십니다.
어머니가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면서 고민은 더 커졌습니다.
게다가 다리를 점점 더 심하게 절뚝거리시니 어머니가 외출만 하시면 불안에 떨어야 했죠.
그러던 어느 일요일, 저는 어머니 댁으로 가서 어머니를 기다리는 대신에 곧바로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이상하게 불안한 생각이 들었거든요.
성당 안을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어머니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도 저를 보시더니 손을 들어 아는 채 하시더군요.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는 데, 어머니는 일어나려고 애를 쓰실 뿐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하십시다.
놀라서 가 보니 다리가 많이 아프신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혼자서 거의 1킬로미터는 족히 되는 거리를 걸어오셨으니 다리에 무리가 온 것 같습니다.
옆에서 어머니 팔을 잡고 부축해 드리며 집까지 같이 걸어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옆에 있으니 안심이 되는 모양입니다.
"이제 내가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기도 밖에 더 있니." 하는 말을 들으니 눈물이 납니다.
지금까지 해 주신 것으로 충분하다고 얘기드리지만 어머니는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루라도 기도를 멈추고, 일요일에 성당에 나가지 않으면 자식들이 불행해 질까봐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날 저도 결심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어머니를 집에서 기다리지 않고, 일요일마다 성당에 같이 모시고 다녀야 하겠다고요.
어머니는 전혀 의도하지 않으셨지만 아들의 발걸음을 다시 성당으로 인도하신 것이죠.
저도 어머니 집 안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성당에 같이 나가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 뒤로는 일요일이 되면 저는 어머니가 드실 음식을 싸 들고 일찍 어머니 댁으로 향합니다.
9시 미사 시간에 맞춰서요.
어머니는 당신을 위한 맛있는 음식,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친구 분과의 즐거운 대화보다 자식에게 무언가 줄 수 있는 기회만 찾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주신 사랑으로 충분하다고 말씀드려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도, 관절염으로 다리를 절어도 어머니의 자식들은 아직도 어머니의 등에 업혀 살며 행복을 유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등은 무한히 넓고 어머니의 품은 한없이 따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