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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nsee Oct 19. 2023

치매어머니와 동행 21

우울증

어느 날 보호 센터에서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보통 보호 센터에서 보내는 문자는 의례적인 인사말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 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론은, 어머니가 우울증이신 것 같답니다.


보호 센터에 도착하시면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는 것은 물론이고, 계속 해서 죽고 싶다는 말만 하신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무렵 어머니 댁에 가면 동네 친구 분이 자살을 하셨다는 둥, 친구분이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는 둥 하고 자꾸 죽음과 관련된 얘기를 많이 하시기는 했지만 별 생각없이 그냥 들어드리기만 했는데 막상 우울증이신 것 같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한동안 제가 힘들어서 어머니께 짜증을 많이 부렸는데 아마 그것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제 자식에게도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 취급을 받으니 자존심이 많이 상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보호 센터 직원은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해 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나이 드신 노인들에게는 흔한 증상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도 덧붙였습니다.

약만 드시면 금방 좋아지실 거라고요.


래서 바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의사는 제 얘기를 다 듣고 나더니 이제부터 처방을 바꾸어야 하겠다고 말하더니 약을 받아가라고 했습니다.

의사의 표정을 보니 보호 센터 직원이 이야기 한대로 특별한 증상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걱정을 해 주기는 했지만 길지 않은 진료가 끝남과 동시에 바로 처방전을 써 주었으니까요.

담담한 표정의 의사를 보니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새로 받은 약 봉지에는 평소 2개가 들어있던 작은 약이 3개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콩알보다 조금 작은 약이었지요.

그것이 우울증을 가라앉히는 약인 모양이었습니다.


보호 센터에 약을 가져다 주었더니 간호사가 처방전을 가져다 달라고 합니다.

아마 보호 센터에서 관리하는 어르신들이 드시는 약은 건강보험공단에 보고를 하여야 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지나고 나니 어머니의 증세는 많이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정신 관련 질환은 고혈압과 마찬가지로 약만 잘 챙겨 먹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던데, 아마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여하튼 다행입니다.


우울증 약을 드시기 시작한 이후로, 약에 대한 저의 강박관념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약을 하루라도 안 드시면 또 죽고 싶다고 하실 것 같아서요.


어머니 몸에는 시한폭탄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두뇌에 몇 개, 왼쪽 무릎에 한 개, 그리고 내가 모르는 곳에도...

그것들을 여러 알의 약들이 폭발을 일으키지 않도록 잘 눌러주고 있는 것이죠.

이젠 효자, 효녀 역할을 하는 것이 자식이 아니라 약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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