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월급쟁이가 되다

"역시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더군요"

by 봉달호

자영업자는 새벽이 즐겁다. 손님이 카드로 결제하면 카드 회사에서는 2~3일 후 자영업자 통장으로 입금해준다. 입금되는 시간이 주로 새벽녘이다. 일어날까 말까, 10분만 더 잤으면 좋겠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나 자신과 밀당을 주고받을 때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연달아 쏟아진다.


그토록 반가운 알림 소리가 세상 또 어디 있을까. 손님들의 카드 결제액이 입금됐다는 메시지가 카드사별로 도착하는 것이다. 평생 카드사로부터 돈을 ‘내라’는 독촉 메시지만 받다가 카드사로부터 돈을 ‘받는’ 연락이라니! 자, 오늘도 경쾌하게 하루를 시작하자고! 훌렁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1.jpg


개인 편의점을 할 때는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편의점으로 전환한 첫날. 지난 3년간 아침마다 받아오던 그 문자메시지가 도착하지 않았다. 즐거운 새벽이 사라졌다. 허탈함을 넘어 강도질당한 기분까지 느꼈다면 조금 지나친 표현일까. 내 처지의 변화를 곧장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프랜차이즈 편의점은 카드 결제액이 점주 개인 통장이 아니라 본사 통장으로 들어간다. 어디 그뿐인가. 손님이 편의점에서 현금으로 결제한 금액도 바로 그날, 지체 없이, 본사 통장에 입금해야 한다. 이를 일(日)송금이라 부른다. 일송금이 며칠 밀리기라도 할라치면 본사에서 득달같이 전화가 온다. 분명 내가 번 돈인데 누군가의 통장으로 매일같이 부쳐야 한다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거시기’ 하다.


그렇게 상납한(?) 매출 내역은 한 달에 한 번씩 ‘정산금’이라는 형태로 점주들에게 지급된다. 내가 가맹한 프랜차이즈는 매월 12일이 정산금 입금일이다. 편의점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 정욱이는 그날을 ‘월급날’이라고 부른다. “야, 오늘 월급 들어오는 날이네?” 하면서 비꼬며 말한다.


정산금이 들어오기 2~3일 전, 본사로부터 정산서가 도착한다. 지난달 우리 편의점 매출은 얼마이고, 상품 매입액은 얼마이고, 그래서 매출이익은 얼마이니까, 거기서 점주님은 무엇무엇을 빼고 얼마를 받게 됩니다. 이런 내역이 가지런히 도표로 정리돼 나온다.


3.jpg


매출이익에서 배분율에 따라 본사 로열티가 빠져나가고, 프레시 푸드를 폐기한 금액, 매장에서 상품 로스가 발생한 금액, 각종 소모품을 구입한 금액, 시설 장비에 대한 수리비 등을 공제한 후에 최종적으로 맨 하단에 표시되는 금액이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순수익이다. 회사 다닐 때 월급 명세서를 받아보던 기분, 딱 그 기분이다. 이것저것 떼고 나니 남는 것이 별로 없던 허탈함!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이렇게 재확인된다.


정욱이의 비아냥처럼, 프랜차이즈 편의점에 가맹하는 건 자영업자에서 다시 월급쟁이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편의점 사장’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한때 잠깐 어깨가 뿌듯할지 모르겠지만, 몇 달 그렇게 편의점을 운영해보면 ‘운명이란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는구나’ 금방 깨닫게 된다. 이런 걸 두고 ‘빚 좋은 개살구’라 한다지? 웃픈 현실이로세!




안녕하세요. 글을 쓴 편의점 아저씨 봉달호입니다.


그동안 월요일에 연재된 브런치 매거진 <매일 갑니다, 편의점>은 같은 제목으로 제가 쓴 책을 요약 소개해 왔습니다. 요약이라는 지면의 한계 때문에 내용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어 미흡한 점이 많았음에도 과분한 사랑을 전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 글은 브런치 매거진 <전지적 편의점 시점>을 통해 계속 만나보실 수 있으며, 2019년 가을 발간을 목표로 집필중인 <일본 편의점 탐방기>를 연재 중에 있습니다. 따뜻한 격려와 질책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전 09화좋은 건 늘 이렇게 사라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