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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달호 Oct 29. 2018

손님, 앞이나 뒤나 똑같아요

"결국엔 우리 모두의 손해 아닐까요?"

편의점 점주들에게 가장 싫어하는 손님 유형을 물으면 ‘뒤에 있는 제품을 빼내는 손님’이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반말하는 손님, 돈을 집어 던지는 손님, 근무자에게 치근덕거리는 손님과 함께 1위를 다툰다.) 사실 우리 편의점은 제품 회전율이 좋아 물건을 뒤에서 빼가든 말든 상관없지만, 편의점을 몇 년 운영하다 보니 일종의 동료의식인가, 나도 이제 그런 손님들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편의점 진열대의 상품들은 일렬로 가지런히 줄을 서 있다. 거기에도 순서가 있다. 맨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상품이 유통기한에 가장 가깝고, 뒤로 갈수록 유통기한에서 멀어진다. 먼저 들어온 제품이 먼저 팔려 나가도록 만든다는 의미에서 업계에서는 이것을 ‘선입선출(先入先出)’이라 부른다. 그렇게 해야 폐기를 줄일 수 있고, 모든 제품을 신선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규칙을 깨뜨리는 손님이 꼭 있다. 앞에 있는 상품을 놔두고 뒤에 있는 상품을 끄집어내는 분들! 이들은 뒤에 있는 상품이 최근에 들어온 상품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냉장고 안쪽에 있는 상품이 더 차갑다 생각해 뒤에서 빼내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편의점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 정욱이는 계란이나 유제품이 들어오면 창고에 숨겨뒀다가 진열된 제품이 다 팔려야 새로 꺼내놓곤 한다. 고생스럽게 뒤에서 꺼내봤자 성과가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과학적인 '밑장빼기' 대응법이자 일종의 소심한 복수극이고, 편의점 근무자와 손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정욱이뿐 아니라 많은 편의점 점주들이 그렇게 한다. 우유, 요구르트, 삼각김밥, 샌드위치까지 그렇게 하는 점주들도 있다.


그런 심정은 넉넉히 이해되지만 나는 대체로 그런 방식에 반대해왔다. ‘단 하나만 남았다’는 희귀 마케팅을 하는 제품이 아닌 이상, 유통 매장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가지런하고 풍성하게 쌓여 있어야 고객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그게 기본이고 상식이다. 그래서 나는 진열대에 비어 있는 공간을 용납하지 않았고, 정욱이에게도 늘 강조해왔다. 뒤에서 물건을 빼내는 손님이 살짝 얄미운 건 사실이지만 무조건 쌓아두라고 했다. 그리하여 폐기가 발생한다 할지라도, 그것마저 영업비용이라 생각하자고 했다. 그런데 정욱이는 종종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물건을 뒤에서 빼 가든 앞에서 가져가든 손님의 자유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물론 자유다. 하지만 자기에게 큰 손해가 끼치는 문제가 아니면 일반적인 규칙에 따라주는 것이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는 일종의 ‘매너’ 아닐까? 예컨대 200밀리리터짜리 우유를 쇼케이스 맨 안쪽에서 꺼내려 낑낑거리는 손님이 꼭 있다. 500리터나 1리터짜리 대용량 우유를 사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대충 이해가 된다. 사나흘쯤 두고 마실 수도 있으니 유통기한도 여유를 감안해야겠지. 그런데 단번에 훌쩍 마실 200밀리리터짜리를 반드시 최신 상품으로 가져가려 애를 쓰는 그 심정을 나는 쉬이 이해를 못 하겠다.


사람들은 입장이 바뀌어봐야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 편의점을 몇 개월만 운영해보면 누구든 점주들의 이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발주량 설정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자꾸 뒤에서 빼 가는 손님들 때문에 우유를 몇 개씩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보시라. 점주 개인의 손해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사회적인 손해이고, 그렇게 발행한 폐기 비용은 훗날 가격 인상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자신의 무의식적 행동이 빚어낸 어두운 나비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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