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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달호 Nov 05. 2018

좋은 건 늘 이렇게 사라지네요

"공감은 먼저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

프랜차이즈 편의점마다 통신사 할인 제도가 있다. 고객이 통신사 멤버십 서비스를 활용하면 10퍼센트 정도 가격을 할인해준다. 적지 않은 할인율이다. 처음 제도가 시행됐을 때는 일일 사용 횟수에 제한이 없었다. 하루에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대신 1년에 10만 원, 이런 식으로 할인받을 수 있는 총액 제한만 있었다. 그런 제도가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렸다. 하루에 딱 한 번으로.


지난겨울, 그리하여 손님들과 전쟁을 벌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님들은 왜 통신사 할인이 안 되는지 묻고, 나는 내 나름대로 만들어낸 자조 섞인 멘트를 손님들에게 전했다. 


“좋은 건 늘 이렇게 사라집니다.”


어찌 보면 좀 식상한 멘트다. 그래도 장사를 하다 보니 손님을 상대로 연기력이 갈수록 늘어난다. (이러다 연극배우로 전향하시겠다.) 내가 터득한 연기력의 대부분은 ‘공감의 표정을 짓는’ 기술이다. 매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게 손님 탓인지 우리 탓인지 따지지 않고, 어쨌든 “화가 많이 나셨겠네요”라거나 “걱정이 많이 되시겠습니다” 혹은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신가요?”라고 운을 떼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이건 동감(同感)이 아니라 공감(共感)의 메시지다. 동감은 상대의 견해와 입장에 대한 동의와 찬성을 전제로 하지만 공감은 그와 상관없이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그럼 아무리 화가 난 사람이라도 차츰 진정이 되더라.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다툼은 보통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너와 나는 생각이 달라’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내가 일단 기분이 나빠’의 문제인 것이다. 당면해 이성적으로 판단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아무리 이성을 되찾으라고 호소해봤자 소용이 없다. 일단은 감정부터 어루만져야 이성적 접근이 가능해지는 사례를 자주 접한다. 


특히 우리 한국인은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지 감성적 대응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최대한 감정의 동반자가 되어줘야 그러니까 ‘나는 당신의 편’이라는 느낌을 심어줘야 비로소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되는 것이다. 대화를 시작해야 해결도 가능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럴듯한 ‘멘트’를 개발한다.


통신사 할인은 편의점 브랜드마다 지정된 통신사에 한해서만 적용된다. 예컨대 KT와 LG유플러스 가입자는 GS25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고, SKT 가입자는 다른 편의점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 편의점에서 “여기는 왜 SKT 할인이 안 되는 거예요?”라고 묻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 무뚝뚝하게 안 된다고 잘라 말하거나 이러쿵저러쿵 설명하기보다 “그러게요, 저도 SKT 가입자인데 아쉽네요”라고 답한다. (거짓말이다. 나는 KT 가입자다.) 고객이 단골이라면 “통신사는 돈 벌어 뭐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좋은 일에 혜택 좀 베풀지”라며, 통신사를 손님과 나의 ‘공동의 적’으로 만든다.


최근에는 한 전자담배가 자꾸 동이 나 손님들의 불만이 많다. “왜 그 담배는 그렇게 없는 거예요?”라고 물으면 이런저런 이유로 없다고 말하는 것보다 “그러게요, 저도 한번 피워보고 싶네요”라고 대답하며 가만히 웃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이것도 거짓말이다. 나는 담배를 안 피운다.)


“그러게요.” 이 말은 참으로 신비한 마법의 말이다. 이제는 습관처럼 입에 붙었다.


그러게요. 포장이 약간 허술하네요.

그러게요. 용량이 좀 작네요.

그러게요. 월급 빼곤 다 오르네요.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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