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쵬개 Jun 19. 2023

미용실 다녀온 날엔 집에 그냥 가기 아쉽다

집에 갈 건데 곱게 스타일링해주신 건에 대하여...






 여름이 왔다. 두피에는 땀이 차기 시작하고 머리숱이 빽빽하게 들어찬 나의 머리칼들은 통풍을 못 시켜 열을 발산하지 못한다.

 몇 번이고 단발이 치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긴 머리를 휘날리는 여성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싶었다. 숱한 염색과 펌을 거치며 마치 인형모가 된 지도 오래였지만 꾸역꾸역 버텼다.

 햇볕에 타 갈색이 되어버린 머리가 펌을 만나 자유분방해 보여 어쩔 땐 마음에 쏙 들기도 했다가 너무나도 솔직한 화장실 속 거울을 보면 웬 거지가 있나 하고 잘라버리고 싶기도 했다.


 어제도 팔 아파가며 두 번이나 샴푸를 해야 제대로 감기는 머리에 잘 빗겨지지도 않는 샴푸빗을 쓰며 머리를 감고 한참을 헤어드라이랑 싸우다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선풍기를 틀며 마르지도 않는 머리를 만지다가 또 한껏 뭉쳐 마치 수세미가 된 뭉텅이를 발견했다.


'아.. 자르자.'


 바로 집 앞에 있는 미용실에 예약 전화를 했다. 일 년에 한 번씩 방문하는. 미용실에 돈을 많이 들이지 않는 게 나의 속으로만 간직하는 자랑거리다. 그래서 이번에도 더 오래 버티다가 가려했으나..


 여하튼 내가 다니는 미용실은 돌아다니는 비둘기도 길들이는 원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이다. 청담에서 한참을 일하시다가 동네 미용실을 여셨다고 한다. 시골에 능력을 숨기고 온 고수의 같달까


 시간이 들수록 미용실에 가면 상세히 요청을 한다. 어렸을 땐 대충 알아서 잘라주세요라고 말했고 그게 미용사입장에서도 편할 거라고 착각했다. 대체로 머리에 까다롭지 않아서 말한 것이 그들에겐 답답한 손님이었을 거란 걸 sns를 보고 알게 되었다. 과거의 선생님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번엔 할 말을 미리 준비해 갔다. 남아있는 펌의 마지막선으로 중단발. 머리는 많이 솎아주시고 앞머리는 자연스럽게 조금만. 소심함을 한껏 숨기고 말했는데 다행히 원장님은 이런 요구사항들을 듣고 은근히 좋아하시는 눈치다.


 잠시 의견을 교환하고 원장님은 바로 가위를 들어 올리셨다. 긴 머리에서 중단발로 가는, 꽤나 많이 잘라내는 컷이었는데 원장님은 숭덩숭덩 마치 내가 집에서 마구잡이로 자르듯이 잘라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한 덩이를 잘라낼 때마다 느껴지는 가벼움에 쾌감이 일었다. 왜지. 딱히 이별을 겪은 것도 아닌데. 작년 놈팡이 시절의 나와의 이별이었을까. 지금이라고 놈팡이가 아닌 건 아니지만.


 머리숱까지 한참을 치고 원장님의 강아지와 인사도 나누고 시술이 끝났다. 바로 집에 갈 예정이라 머리도 안 감았는데 드라이를 열심히 해주는 손길에 황송할 따름이었다. 만족스럽게 잘린 머리를 거울로 확인하고 밖을 나섰는데 날도 좋았다. 갑자기 약속을 잡을 수 도 없고..


이런 날엔 그냥 집에 들어가기가 참 아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