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놀이
"으아앙으앙"
아기 두 명이 떼를 부리며 나에게 매달린다.
9개월짜리 둘째야 그렇다 치더라도 키가 100센티가 넘는 6살짜리가 힘을 있는 힘껏 쓰며 매달리면 휘청한다.
순간적으로 '얘가 왜 이래, 힘들게'라는 생각이 들다가
한숨 돌리고 주방에서 물을 마시며 보니
아이의 눈빛이 보인다.
말은 하지 않지만 관심을 바라는 듯한 눈빛이다.
이래서 다들 외동 놀이가 필요한다고 하는구나.
엄마의 관심을 오롯이 흠뻑 받아내는 시간.
아이에게는 당연했던 것들이 희소성이 있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극초보 운전자인 내가 서울 시내를 곳곳 다니는 것은 아직 조금 무섭기에
생각해 낸 것이 도서관 데이트다.
운이 좋게도 집 근처에 산속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 건물 외에도 실내 놀이방, 모래 놀이터, 폭포가 있는 작은 광장이 있어서
아이와 놀러 가기에 좋다.
하루에 두세 시간씩은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데
두권 읽어주기에도 빠듯한 요즘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면
외동놀이도 하고 책이랑도 친해질 수 있어 일타이피다 싶어
3개월째 매주 주말이면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우리 오늘도 둘이서 데이트하는 거야!"
반납할 책과 간단한 야외 놀거리를 챙기고 모자를 쓰고 둘이 길을 나선다.
가는 동안 서로에게 사랑의 총을 쏘며 "데이~트! 데이~트!!"를 다섯 번 정도 외치고
박자에 따라 발을 맞춰 뛰어간다.
"엄마 나는 저 절벽(동산기슭)에 꽃이 펴있는 게 너무 무서워 ㅎㅎ"
그 길만 지나가면 한 달 넘게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길에 피어있는 꽃들을 보고도 재잘재잘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 걸 보고도 조잘조잘
입에서는 끊임없이 예쁜 말들이 흘러나오고
눈에서는 달달한 행복이 흘러나온다.
그렇게 좋을까
도서관에 도착해서는 익숙하게 좋아하는 코너로 간다.
집에는 없는 2절지 정도 되는 사이즈의 책을 골라 자리를 잡고
둘이 붙어 앉아 엎드려 읽는다.
그리고는 어떤 책들이 있을까 기웃기웃하는 하는데
창문을 배경으로 하는 그 모습이 예뻐
나는 사진 찍기에 바쁘다.
빌릴 책을 두권 정도 챙기면 엄마 책도 빌리러 가자며 손을 잡아끈다.
언제나 글쓰기 실력에 고민이 많은 나는 '사이토다카시의 훔치는 글쓰기'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아이는 요리책을 두어 권 뽑아온다.
요즘 밥이 맛이 없었니 우리 딸
너의 마음 알았어, 엄마 고민 좀 할게
아이의 도서관 마지막 루틴은 방앗간이다.
진짜 방앗간은 아니고,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는 것처럼
도서관 내 작은 카페다.
카페 쇼윈도 냉장고 앞에서 열심히 고르더니 오늘은 쫌 더웠는지 뽀로로 보리차 당첨이다.
날 안 더울 때는 머랭이며 마카롱이며 평소에 못 먹는 걸 고른다.
일단 도서관 이미지 메이킹 중인 엄마는 아이가 원하는 건 마다하지 않고 사준다.
이렇게 도서관이 맛있는 것도 많고 재미있는 곳이란다 딸아
집에서 나온 지 2시간 정도 지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침에 나올 때보다 아이의 텐션은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신난 목소리로 내 손을 꼭 잡고 이야기한다.
"엄마, 오늘도 데이트 정말 재미있었어,
우리 다음 주에는 또 어떤 책을 볼까?
아, 그런데 아빠 김밥 사가야 하지 않을까?
건강이는 일어났대?
우리 이따가 발레 가는 거 맞지?"
"응, 엄마도 정말 재미있었어
딸아, 도서관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 어떻게 참았니
엄마는 도서관이 정말 재미있다 호호"
약간의 가스라이팅을 곁들인 엄마의 사심 채우기
더하기
외동놀이로 아이의 사심 채우기
이 정도면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