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보, 오늘은 아이스크림 시켜 먹어야 해

거절은 없어

by 그럴수있지

"우리 가족 요즘 안 아픈 거 같은데?? 영양제를 잘 챙겨 먹어서 그런가??"

남편과 한 말 때문이었을까

며칠 뒤 첫째 아이의 코가 막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목이 조금 아파와서 둘이 병원을 다녀온 게 얼마 안 됐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9개월 둘째 아이의 코막힘과 콧물이 삐죽 나와있다.

어제 오후부터 그렇게 칭얼거리더니 저렇게 앙증맞은 콧물이 나와버렸네


마침내 콧물도 터져버려 같이 소아과 오픈런을 하고 유치원을 데려다줘야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챙겨서 길을 나섰다.

낮 최고기온이 36도를 육박하는 날이지만

아침에 서둘러 부랴부랴 다녀오면 괜찮겠지 싶어

유모차를 끌고 가방을 챙겨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서둘러 접수를 했다.

둘째는 병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사 선생님을 한껏 노려보더니

선생님이 코를 빼자 악에 악을 지르며 운다.


아이는 분이 풀리지 않아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기 낳기 전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모습 중의 하나인

아이 안고 유모차 끌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제 10분 거리의 유치원에 도착해서 둘째를 유모차에 간신히 앉히고 첫째에게 인사하고 들여보내는데

선생님 한분이 둘째에게 이쁘다며 인사를 하신다.

으아아아아아앙

저기 선생님 나중에 저한테 시원한 물 한잔 주셔야겠습니다..

어느새 체감온도가 33도의 날씨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집에 가면 에어컨이 있어!

가서 낮잠 재우면 2시간은 쉴 수 있어!!

지금 상황에 지지 마! 넌 해낼 수 있어!

를 속으로 무한이 외치며 아이를 한 손으로 꽉 끌어안고 유모차를 밀면서 집으로 오는 길

힘든 내 눈엔 안쓰러운 건지, 구경하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쳐다보는 아줌마들과

벌건 얼굴은 보이지 않는지 지나가는 나에게 공동 현관문 여는 방법을 빨리 알려달라며 재촉하는 할머니까지

15분 사이 모든 미션을 해결하고 집에 왔다.

와우

집이 천국이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몇 시간 뒤, 첫째 아이의 하교시간.

여긴 사막도 아닌데 햇빛이 타오르는 날씨다.

감사하게 집 앞에서 내리는 아이를 데리고 쏙 들어올 생각에 아무 장비도 안 하고 아이를 데리러 나간다.

"엄마, 나 시현이네 집에 오늘 놀러 가기로 했어!"

"엄마가 나중에 시현이 엄마랑 약속을 따로 잡아서 놀러 갈게,

오늘은 동생이 아파서 안돼, 얼른 들어가자"

"안돼~~~ 놀기로 했단 말이야~~~~ 으아아아앙"

(너는 이 땡볕에 눈물범벅으로 악을 지르며 울고 싶니

자매가 우는 게 똑같네

힘든데 그늘에 가서 우는 건 어떠니)

아기띠를 한 채로 한 손은 둘째 햇빛을 가려주고

다른 한 손을 유치원 가방을 멘 채로 첫째 아이를 주시하면서

아이친구엄마에게 상황 설명을 한다.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집에 들어와서 한참을 어르고 달랜다.

누가 저 달달한 것 좀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그래도 오늘은 하원하고 집에서 쉬기만 하면 되는 날이라서 참 다행이다.

이 날씨에 학원 셔틀할 생각 하면 어우 끔찍하다 끔찍해

어.. 어..?

둘째의 이마가 왜 뜨끈한 거지

내 손의 감각이 잘못되었길 바라며 체온계로 3,4번은 재어본다.

아이는 38.4도

밖은 36.2도

아침에 의사 선생님은 말하셨지

"열이 38도가 넘어가면 병원에 오세요"

그게 당장 6시간 뒤가 될지는 몰랐어요 선생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첫째 아이 간식을 두둑이 먹이고 이것저것 챙겨 아이 둘을 데리고 또 병원으로 간다.

이번엔 아기띠를 하고 양산을 챙기고 첫째에게는 모자를 씌우고 각자 부채를 집어 들고 길을 나선다.

헉헉헉헥

이번 나의 실수는

아주 무더운 날 부채는 따뜻한 바람만 만들어내는 짐이라는 걸 간과했다.

젠장!

다행히 잘 먹고 잘 놀아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셔서 집에 돌아오면서

차를 두 번 긁어먹은 초보 운전자인 나는 다시 다짐한다.

차를 백번을 긁어먹어도 이제 무조건 운전해야지


집에 돌아와 땀으로 끈적이는 아이 둘과 나까지 다 씻으니 6시.

나 이제 아무것도 못한다며 침대에 철푸덕 해버리고 싶지만

나에게는 육아의 러시아워인 저녁시간이 있다는 사실에 후후 웃고 홍삼을 털어 넣었다.

엄마의 삶이란.



사람들이 가끔 둘째는 키우기 더 쉬어요?

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애매하게 "둘째만 키워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나의 능력치와 경험치는 올라 둘째 아이만 보면 키우기가 더 수월한데,

아이가 두 명이 있다 보니 오늘처럼 아프거나 한 날엔

첫째도 동생 병원 따라다니느라 지치니 더 칭얼,

둘째도 언니 유치원 따라다니고 하원길 떼부림에 함께 있느라 지치니 더 칭얼대는 것처럼

역시너지(anti-synerge)를 내는 날엔 상황이 매우 매우 어려워진다.

점점 내 능력치와 경험치가 또 쌓여가고 아이들이 조금 크면 나의 대답이 달라지려나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그저

오늘을 잘 보낸 나에게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나 오늘 말리지 마 토핑 5개 넣을 거야!


keyword
이전 16화엄마 일곱 시까지 올게